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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Apr 29. 2022

저출산과 법륜스님의 상관관계

꼭 한번 법륜스님의 육아론에 관해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법륜스님이 쓴 <엄마수업> 읽으며 태교를 했었다. 그때는 임신, 출산, 육아를 하나도 안 겪어보았던 백지 상태였다. 즉문즉설을 들으며 스님의 혜안을 곱씹으며 감탄한 적도 있었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법륜 스님처럼 "애는 엄마가 끼고 3년을 키워야 한다"고 당연하게 이야기하길래 소중한 아이를 위해서 응당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 줄만 알았다. 


이제는 나도 엄마로서의 경력이 9년째다. 아이도 셋씩이나 낳았다. 아이 나이도 겨우 4개월 지난 아기부터 5살, 9살까지 다양하다. 일반 회사에 다니던 워킹맘 시절도 있었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눈물콧물 다 빼고 결국은 퇴사해서 전업맘으로도 몇년 지내 보았고, 다시 구직해서 공무원 신분으로 돌아가서 워킹맘도 해 보았고, 지금은 육아휴직으로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전업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은 일반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인데 아이가 둘셋이 되고 귀여운 아기가 눈에 밟혀 육아휴직을 4년째 하고 있다. (아무리 프랑스 회사라고 해도 남자 육아휴직은 전무하다. 회사 창립 이래로 남자 육아 휴직은 남편이 처음이었다.) 프랑스 남편과 살면서 프랑스식 육아로 남편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한국식 육아를 매번 남편에게 납득시켜 가며 여기까지 왔다. 주변에 외국인도 많이 접하는데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한국 육아 방식이 다른 나라에서는 씨알도 안먹히는 경우도 보았다. 이 정도면 나도 직접 겪은 지난 9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법륜 스님의 육아론에 몇 마디 할 자격은 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쓴다.


법륜 스님의 육아론은 요약하면 이렇다. "아이의 처음 3년은 엄마가 끼고 키워야 한다. 육아휴직을 하면 가장 좋다. 육아휴직이 안되면 아이를 업고 가서 일을 해라. 가장 나쁜 것은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다른 사람이 보도록 떼어놓고 엄마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엄마가 안된다면 주양육자가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아빠든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지만 주양육자는 바뀌면 안된다. 엄마라면 응당 아이를 위해 3년 희생해야 한다. 나는 내 그릇이 안된다는 걸 알고 진작에 알고 시작 안했다."


육아휴직이 되는 직장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자영업자나 일반 회사나 중소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고용보험에 든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같은 역량의 인재를 1년~3년 단위로 딱 필요한 기간만큼만 충원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보통 회사에서 맞는 업무 분담은 매우 전문적이고 세분화되어 있는데, 1년을 육아휴직 한다고 자리를 비우면 그 1년을 메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새로 사람을 다시 채용해서 쭉 쓴다면 모를까. 그렇게 보면 육아휴직은 인력충원이 용이한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정도나 겨우 가능한데, 그래도 육아휴직이 되는 직장이라 해도 막상 실제로 쓰기는 어렵다. 집도 한칸 없는 처지에,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처지에,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돌아서면 집안 경제가 휘청거린다. 그리고 3년! 그 애증의 3년! 막상 해보니 육아는 3년만 바짝 한다고 끝나는게 아니었다. 만 3년이 지나면 똥오줌은 가리고, 직립보행을 할줄 알며, 밥을 혼자서 떠먹고, 옷을 혼자서 입을 수 있는 수준의 동물적인 일상 생활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육아는 계속된다. 아이는 입만 열면 "이건 뭐야?", "왜?"를 달고 살며 질문을 해대고, 화가 나면 울거나 떼를 쓰고 때리기도 한다. 여전히 말로, 행동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양육자의 몫이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사춘기가 닥치면 그때는 또다른 종류의 육아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사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육아는 육아 하나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아이를 돌보려면 수많은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같이 밀려온다. 장보고, 요리하고, 먹이고, 냉장고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것까지 일련의 부엌일, 매일 묻히고 흘려 더러워진 아이 옷을 빨고, 널고, 개고, 때 맞춰 계절별로 꺼내고, 넣고, 작아진 옷은 기부하고, 물려주고, 쑥쑥 크는 아이 옷을 제때 구입해야 하는 의류 관리, 널부러진 책과 장난감 정리와 바닥 물걸레질 청소에, 재활용 분류해서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청소 정리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정기적인 일이다. 비정기적인 일은 아이 성장에 맞는 장난감을 사서 놀아주고, 좀더 크면 알림장 확인, 받아쓰기, 숙제 봐주는 학습적인 면, 때 되면 병원 정기 검진과 예방 접종 맞혀야 하고,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서 진찰 보고, 약 받아서 때마다 약먹이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을 엄마 한 명이 해내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하다. 내가 해봐서 안다.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꽤나 책임감이 강하고, 참을성도 강한 편이며, 기본 체력도 좋은 사람이다. 극기를 외쳐가며 국토 대장정도 해봤고, 소싯적에 공부도, 회사일도 매진해 봤고, 크고작은 성과도 내봤던 사람이다. 그런데 애 보고, 살림을 혼자서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못하겠어서 두손두발 백기 다 들었다. 그래서 이 사태의 공통책임자인 남편을 나와 같이 집에 들어앉혀 육아휴직해서 같이 보기도 하고, 어린이집 도움도 받고, 학교에 돌봄교실 선생님 도움도 받고, 학원 선생님 도움도 받고, 아이돌보미 이모님 도움도 받고, 이웃집 아이 친구 엄마 도움도 받고, 시어머니 도움도 받고, 친정부모님 도움도 받고, 동생네 도움도 받고, 반찬가게에서 주문도 해먹고, 식당 가서 밥도 먹고 임기응변으로 그렇게 겨우 키운다. 이렇게 안했더라면 나는 아마 TV뉴스에 나오는 아동학대 부모 주인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날더러 애 하나도 힘든데 어떻게 아이를 셋씩이나 낳을 결심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내 대답은 이렇다. 여태까지 애를 셋 낳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다. 삼신할미가 나에게 아이를 점지해 주고 갔을 뿐이다.(21세기에 이런 대답을 하는 87년생이라니, 내가 이런 대답하고 살줄 몰랐다!) 다만, 내가 아이 셋을 감히 낳을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내 주변에 날더러 "엄마라면 응당 이래야지!"하고 죄책감을 심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날더러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내가 못하는 몫은 주변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아이들이 이손저손 도움받아가며 컸다. 살림은 때때로 외부 도움을 받아가며 일상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법륜스님의 육아론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나는 엄마로서 50점도 안될 것이다. 3개월 출산휴가 지나자마자 직장에 복귀했고, 생판 처음 보는 돌보미 아주머니에게 안간다고 앙앙 우는 아기를 맡겼으며, 돌이 겨우 지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100점을 목표로 했더라면 나는 엄마가 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완벽에서 거리가 먼 엄마이기에 애를 셋씩이나 낳아서 키우고 산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저출산에 법륜스님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육아 그릇이 안되는 사람은 본인처럼 아예 시작도 말라고 했으니. 결국은 오로지 아기만을 위해 3년을 동굴 속에서만 수행할 능력이 있는 엄마, 그리고 이런 상황의 엄마와 아기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아빠만 아이를 낳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가능한 부부가 우리 나라에 몇 퍼센트나 되겠으며(이미 경제적인 기반과 여유가 있으며, 그것도 직업이 공무원일 경우만 가능), 실제 있다고 해도 아이 하나를 그렇게 키우고는 몸과 마음에 골병이 들어 둘째, 셋째 아이를 낳을 엄두조차 못내게 된다.


내가 만나본 중국 엄마들은, 프랑스 엄마들은 육아에 대한 부담감과 죄책감이 없었다. 다들 자기 상황에 맞춰서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를 키웠다. 미혼모는 미혼모대로, 직장맘은 직장맘대로 여기저기 남의 손을 빌려가며 키웠다. 갓 낳은 아기를 두고 해외출장을 가야 하면 덤덤히 갔다. 한국엄마들처럼 전전긍긍한다거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남편도, 시댁도, 친정도 그러려니 했다. 다들 그저 본인 상황에 맞게 키웠다. 아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 시어머니도 법륜스님 방식으로 따지면 아마 20점도 채 안될 것이다. 직장생활 때문에 겨우 3개월된 아기를 외할머니댁에다 맡겨놓고 주말에만 봤단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서부터 집에 데려 와서 같이 살았다는데, 그래도 우리 남편 큰 문제없이 잘 컸다. 내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할만큼 멋진 사람으로 컸다. 반면 우리 엄마는 법륜스님 방식으로 따지면 100점 만점에 가깝다. 전업주부로 나와 동생을 항시 끼고 키웠으며, 우리가 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학교 가 있을 동안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정도의 일만 잠깐씩 하셨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잘 자랐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어렵다. 내가 크게 잘못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키우느라 엄마 젊음이 사그라졌다는 한탄은 수도없이 듣고 자랐고, 나 때문에 엄마 삶이 희생되었다는 부채 의식은 굉장히 무겁다.


때로는 결핍이 더 큰 재산이 된다. 이제는 한국 엄마, 아빠들도 어깨에 잔뜩 들어간 육아의 부담감을 좀 내려놓았으면 한다. 법륜스님이 하라는 만큼은 못하고, 그럴 여력도, 상황도 못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열달 곱게 품어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다. 입덧으로 계속 토하고, 뱃속의 애가 커갈수록 뱃속에 장기가 눌려서 밥도 제대로 못먹고, 요실금이 생기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다리가 퉁퉁 붓고, 밤잠 못자고, 목숨 걸고 출산을 해서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다. 법륜스님 기준만큼 못해도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둘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라 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한쪽에서도 시멘트를 뚫고 민들레는 꽃을 피우며, 그 꽃도 여느 꽃 못지 않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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