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되돌아보며

by 이주리

코로나가 터지고 2020, 2021 두 해동안 꿈쩍도 안하고 온가족이 집에서 스스로 자가격리 생활을 했다. 나도, 남편도 육아휴직을 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코로나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안 열었다 하는데, 그때마다 애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 속 편하게 쉬기로 했다.


그렇게 온가족이 집에 들어 앉았다. 애들도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안 갔다. 정규교육(학교)이 아니라서 집에 데리고 있어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급식소였고, 어린이집이자 유치원이었다. 꿈에도 꿔본 적 없던 홈스쿨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그나마 우리집이 시골집이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층간소음 걱정이 없었다. 마당도 있었다. 기나긴 하루를 채우느라 마당에서 온가족이 꼬마야 꼬마야 줄넘기도 하고, 배구시합도 하고, 토끼도 키워보고(일주일만에 하늘나라 갔지만), 텃밭도 가꿔보고(이것도 다 실패했지만), 대형 트램폴린도 설치해서 온 가족이 뛰기까지, 그야말로 안해본 게 없다. 식당이고, 여행이고 아무 데도 안 갔다. 2년동안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본 듯 하다. <코로나 거리두기 시합>이 있다면 우리는 아마 상위 1%에는 들 것이다. 남편은 그노무 밥, 밥, 밥을 해대느라 국수 기계, 빵 기계, 피자 반죽 기계까지 갖춰놓고 집에서 하루종일 부엌에서 종종거렸다. 그 와중에 2021년에는 나는 셋째 임신까지 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코로나에 안 걸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병원에서 무사히 마스크 쓰고 셋째도 낳았다(애 낳을 때 모든 사람이 마스크 쓰는 상황은 코미디 같았지만). 아직까지 코로나는 안 걸렸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코로나 안 걸렸다는 것만 빼고 우리는 이룬 게 없었다. 아이들은 살이 쪄서 비만이 되었고, 친구도, 추억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기진맥진해 있었다. 코로나로 우리가 얻은 것은 바보(학교도, 어린이집도 안가고, 친구도 안만나서 사회성이 지나치게 결여되었다), 돼지(마당에서 나름 운동을 했어도 온가족이 비만이 되었다), 거지(집에서 애 돌보느라 육아휴직을 했고, 직장을 못나가서 돈이 없었다)가 된 것 뿐이었다.


2022년 설날을 맞이하고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올해 목표가 무엇이냐고. 나는 '코로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무엇이든 하는게 목표라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코로나가 있어도 친구도 만나서 식당 가서 밥도 먹고, 술도 드시고, 일도 하셨다. 물론, 인원수 지침이라던지, 시간이라던지 지켜가면서 했지만, 그래도 옆에서 코로나로 스스로 자가격리를 선택한 나로서는 걱정이 되었다. "아빠, 그렇게 다니면 코로나 걸릴까봐 걱정 안돼요?" 아버지한테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맞다. 오늘도 밀대로 거실바닥을 닦으며 김종환의 노래 <사랑을 위하여>의 한 구절을 흥얼거린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이제는 남편도 일을 하러 가고, 나도 사람을 종종 만나고(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함정, 죄다 코로나에 걸려 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유치원에 간다. 주변 사람들이 줄줄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간다. 우리도 번호표 뽑고 코로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다. 이제는 피할 길이 없다. 온 세상 사람이 다 걸리는데 나 홀로 안 걸리는 것도 말이 안된다. 내가 뭐 대단하다고 열외가 된다고. 이제는 코로나라는 파도가 몰려오면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올라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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