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 왜 시골에 살아요?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전으로 시간여행을

by 이주리

젊은 사람이 왜 시골에 살아요?


시골집에 들어온지 어느덧 꼬박 4년이 흘렀다. 사람도 사시사철 계절은 두루 지켜봐야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는데, 시골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네 번을 거쳤으니 이제는 시골살이에 대해서 몇마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감히 시골살이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젊은 사람이 왜 시골에 살아요?" 시골에 들어오면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이다. 가족, 친지부터 시작해서 주변 친구, 동료들, 어쩌다 택시를 타게 되면 처음 만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 일년에 한두번 명절이나 제사로 고향을 찾는 이웃 사람들까지 끊임없이 물어댔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장황했다. "저희는 도시 아파트에 살만큼 돈이 없고요. 애도 둘이고요. 이제 뱃속에 애까지 나오면 애가 셋이고요. 애 셋한테 어떻게 맨날 뛰지 말라고 하겠어요. 시골 살면서 애들이 자연과 더불어 뛰고 놀면서 크고, 시골 학교 다니면 정서에 좋잖아요. 저희 남편은 외국인인데 아파트를 극도로 싫어하고, 자기 땅욕심이 커요. 집이 문제가 생겨서 무너지기라도 하면 내 땅이니 텐트라도 치고 잘 수가 있는데, 아파트는 몇억씩 주고 샀어도 조금이라도 문제 생기면 땅도 없고, 갈 곳이 없다네요. 그리고 아파트 층간소음에 질릴대로 질렸고요. 그러고 보면 저도 어릴 적 할머니집이 시골에 있어서 방학마다 갔었는데 좋았고요."라고 주절주절 말하기에는 우습지 않은가. 그렇게 내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으면 질문한 사람이 넘겨 짚어 다시 묻는다. "시댁이 여기 시골인가 보죠? 아니면 친정이 여기에요?" 한번 보고 말 사람이면 "네..." 그러고 말아 버린다. 자꾸 볼 사람이면 "시골도 친정도 여기 아닌데요. 남편이 시골 좋아해서 같이 들어 왔어요." 정도로 대답한다. '남편이 시골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저도 기회만 되면 고향 시골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덧붙일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 중년 남자들이다. 중년 남자들이 이렇게나 시골살이를 꿈꾸며 살고 있는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처음에 남편이 시골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시골살이가 별로 두렵지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자취를 하며 기숙사, 원룸, 다세대 주택 등 이사를 숱없이 다녔고, 중국 유학하면서 기숙사에도 있어보고, 중국인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도 해 보았고, 중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 형태의 아파트에서도 몇년동안 지내 보았다. 프랑스에서 몇달 살아본 적도 있었고, 유럽도, 미국도 출장과 여행으로 친구집에서 묵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 호텔 이곳저곳 지내보았다. 하물며 시골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한국말도 통하는 내 나라인데 뭐가 힘들어,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골에 지내보니 천지가 개벽하는 것만 같았다. 굳이 따지자면 직장에서 촉망받는 미래와 함께 승승장구하던 여자 직원이, 애를 낳는 그 순간부터 직장과 애아빠와 사회에서 "너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경멸섞인 눈빛과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땅으로 주저 앉다 못해 땅밑으로 꺼진 채, 직장을 잃고, 집 안에서 붙박이 가구가 되어 아이들을 안고, 업어가며, 부엌일과 청소와 빨래를 하며 하루종일 종종거리는 상황과 몹시 닮아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전으로 시간여행을


시골에는 여태껏 내가 몸으로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문명 세계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무리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이 경험했다 한들 지나고보니 다 도시였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했던 문명 혜택을 아예 받을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이 곳, 시골에 오고서야 알았다. 마치 1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택시도 없고, 배달도 없고, 천만다행으로 택배는 오기는 오는데 며칠 지나서 띄엄띄엄 왔다. 시내 버스는 두시간에 한 대 왔으며(그나마 막차가 8시 이후에는 끊긴다), 최근에 마을 버스도 생겼는데 새벽부터 오전 9시까지만 다니고 끝이다. 새벽 마을 장에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타는 거라서 그렇단다.


쓰레기는 200m는 걸어가야 나오는 마을 입구에다 해가 지고 나서 두어야 하는데, 요일마다 내놓을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도 달라서 자가용도 있고, 젊은 사람인 우리로서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하물며 우리 마을의 노인들은 오죽하겠는가. 마을에 쓰레기봉투를 파는 구멍가게도 하나 없고, 봉투를 판다 해도 쓰레기봉투 살 돈도 없는데다, 다리가 아파서 꾸부정한 자세로 겨우 걸어가는 할배, 할매들이 어찌 쓰레기를 이고지고 200m를 걸어간단 말인가.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이 마을의 다수 노인들은 쓰레기를 태우든지, 바다에 던지든지 했다. 처음에 이 사태에 나는 크게 분개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매캐한 쓰레기 태우는 냄새 때문에 콜록거리며 집으로 피신해야 했으니까. 남편과 같이 가서 따져도 보고, 싸워도 보고, 때로는 쓰레기봉투를 사다 주면서 애원도, 부탁도 해 보았다. 면사무소, 시청에 이장님을 통해서 쓰레기 봉투를 판매하자는 건의도 해봤고, 쓰레기 모으는 곳도 마을 안쪽 곳곳에 설치해서 현실적으로 할배, 할매들이 손쉽게 버릴 수 있도록 하자고 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시청도, 면사무소도 시골 노인들한테 관심 자체가 없었다. "노인들이 죽으면 해결됩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을 때 나는 망연자실했다. 어차피 그 젊은 공무원들은 신도시 아파트에 옮겨 다니면서 자랐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골에 산 적도 없고, 앞으로 살 일도 없는 곧 죽을 노인들에게 왜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는거지 싶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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