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만 드글드글한 곳
시골에는 말도 못하게 노인들만 드글드글했다. 35년 살아오면서 이렇게 노인들한테만 둘러싸여 본 것도 처음이었다. 게다가, 시골 노인들은 내가 도시에서 만나오던 그런 노인이 아니었다. 노인 중에 상노인이었다. 70대는 젊은 사람에 속하고, 80대, 90대가 주축이며, 100살이 넘는 노인들도 많이 있다. 일단, 이들은 거동이 불편하며, 말도 불분명해서 알아듣기 힘들고, 내가 인사를 해도 귀가 어두워 알아듣기 힘들다. 이가 아파 조금만 딱딱해도 씹지를 못해서 음식을 나눠드려도 못먹는 음식이 많다. 신 것도 잘 못 드신다. 나물도 곤죽이 되도록 푹 쪄야 하고, 떡을 유난히 좋아하신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일년에 한두번 보는 자식들은, 손주들은 할매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많이도 사다 나른다. 그런 자식과 손주들이 가고 나면 자몽이나 강정, 나물, 전 같은 귀한 음식들은 그대로 우리 집으로 온다.
4년 전 이 맘 때가 떠오른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1년에 한번 마을회관에서 노인회 모임이 있으니 날더러 인사를 하러 겸사겸사 오라고 했다. 남편은 외국인이라 말도 안 통하니 굳이 데려가지 않았다. 집에서 첫째를 보고 있으라 했다. 나는 옆집 할매 조언대로 떡을 넉넉히 하고, 귤을 몇박스 사서 마을회관으로 배달시켜 놓았다. 그리고 단정하게 원피스에, 코트를 차려 입고 갔다. 그때가 둘째를 임신한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긴 풍경은 예상밖이었다. 바닥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꽃무늬 이불과 쿰쿰한 냄새, 그리고 그 이불 속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이삼십명 넘는 할아버지들이었다. 날이 춥다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부엌을 얼핏 보니 할머니들은 보일러도 들지 않는 싸늘한 좁은 주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점심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노인회 회장인 옆집 할배가 개회를 알렸고, 몇가지 안건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죄다 남자였고, 그 중에 유일한 여자가 나였다. 회의 중간이나 끝 무렵에 인사를 하면 될 것 같아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회의를 지켜보고 있자니 내용이 조금 우스웠다. 노인회 회비가 한달에 1000원인데 안낸 사람들이 많아서 명단을 부르고 그 돈을 내라고 닥달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노인회 회원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부조금 위주로 3만원씩 주고 있었는데, 노인회 회비가 적자가 나서 그대로 3만원씩 유지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이 오갔다. 아이들 과자 하나 값도 안되는 천원을 회비로 거두기도 어려운 형편에, 고작 3만원 부조금으로 목청이 터지도록 고성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세계와 영 다른 곳인 것만 같았다. 가장 우스웠던 것은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각자 이야기만 목청껏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들 노인이다 보니 귀가 어두워 상대 말은 들리지가 않았다. 개 중에 모든 말을 다 알아듣고 있는 사람은 귀 밝은 젊은 나 뿐이었다.
어쨌든 회의는 별 결론없이 끝났고, 옆집 할배가 날더러 인사를 하러 나오라고 해서 신입사원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이 마을에 이사 온 이주리라고 합니다. 올해 서른넷이고요. 앞으로 부탁 드립니다." 잠시 침묵이 있더니, 이삼십명 되는 할배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라카노? 누구 집에 이사 왔노?", "찬호 집에 이사왔다 안카나?(이찬호: 등기부 등본에 보면 우리집 전전주인으로 등기부등본에 1942년생으로 나와 있다)", "남편이 미국 사람이라 카던데?", "아이다! 영국 사람이다!", "아이다, 불란서라 안카나."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들은 내가 몇살이고, 이름이 뭔지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저 누구 집에 이사 왔는지, 남편이 몇살 먹었고,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돈은 많이 버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도 도시에서 동호회에서나 있을 법한 식으로 자기 소개를 했으니 서로가 우스운 꼴이었다.
점심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할배들은 망부석처럼 다시 그 자리에 앉거나,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거나 했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물쩡 거리다가 부엌으로 갔는데, 할매들이 날더러 밥상을 펴라고 했다. 접혀 있는 밥상이 열 개 정도 되었는데 제법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