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골에 왔을 때가 첫째가 만으로 세살반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마침 둘째 임신을 해서 육아휴직하며 첫째를 돌보고 집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는데 앞집 할머니가 마당에서 무얼 하는지 모르지만 부산스러웠다. 앞집 할머니 손자도 옆에서 신나는 구경거리라도 있다는 듯 폴짝폴짝 뛰면서 재잘거렸다. 어지간히 심심했던 아이는 날더러 같이 가보자 졸랐다. 종종 앞집 할머니 집에 들러서 토끼 구경도 하고 했던 터라 안면은 트여 있었다. 나도 별 생각없이 아이 손을 잡고 가 보았다.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으악"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 집 마당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온 마당에 피갑칠이 되어 있었다. 토종닭을 몇마리 잡고 있었는데 목을 따고 그 안에 있던 내장을 모두 꺼내서 핏물을 연신 헹구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담가놓고 닭털을 하나하나 뽑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바로 눈길을 돌렸다. 임신한 사람은 이런 거 보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집에 가자 하는데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한테는 그 광경이 너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 집 손자하고 키득거리면서 닭털 뽑는 모습에 한껏 집중해 있었다. 한참 아이를 어르고 달래 겨우 집에 데리고 왔다.
그 날 저녁이었다. 부엌에서 한참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아이가 혼자서 한참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다. 무심코 보고 넘기려는데 아이 포즈가 심상치 않았다. 집에 있던 귀여운 돼지 인형을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한 손에는 길쭉한 쪽집게 같은 도구를 잡고 털을 뽑는 시늉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지금 뭐하는 거야?" 물어보니 "돼지 잡고 있는데"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아이. 으아아, 시골에서,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맞는걸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