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백일 넘은 셋째가 이유없이 앙앙 울어대면 마당에 바람쐬러 나간다. 바깥 공기만 쐬었다 하면 아이들은 희한하게 울음을 그친다. 애기한테도 집이 어지간히 갑갑한 모양이다.
그 날도 아기를 안고 마당 계단에 앉아서 구름과 하늘과 먼 산을 우두커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한테 말을 걸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동요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하루종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항상 심심해하는 옆집 할매가 내 기척을 듣고 우리 집 대문을 기웃거렸다.
"너그 집 머구 좀 캐가도 되나?"("너희 집 머위 좀 캐가도 되니?"라는 뜻)
"당연히 되지요. 이거 뭐 맨날 자르면 나고 또 나는 건데.."
매년 봄이 되면 심지도 않은 머위가 수북하게 우리 집 마당 한켠에 쑥쑥 자란다. 할매는 머위 싹을 가위로 싹뚝싹뚝 끊더니, 한 귀퉁이에 앉아서 손톱으로 줄기를 한껍질 벗겨내기 시작했다.
"이걸로 뭘 어떻게 반찬 해 먹는데요?"
"된장 지질 때 넣으면 돼! 이게 약이다, 약! 도시 사람들은 몰라서 그렇제. 수원 딸이 온다는데 반찬 좀 할라한다! 이거 벗겨야지 부드러워서 먹기가 낫제."
그 옆에서 나도 할매처럼 머위 몇 줄기를 끊어서 줄기를 한껍질씩 벗겼다. 이 집에 이사온지 5년째 맞는 봄이건만 수북한 머위를 보고도 한번도 반찬 해먹을 엄두조차 못 냈다. 처음에는 이게 머위인줄도 몰랐고, 식재료라 해도 해먹을 줄도 몰랐다. 이제서야 처음으로 머위로 된장 지질 때 넣어본다. 사실 나는 된장도 끓일줄도 모르고, 내가 끓인 된장찌개는 지지리도 맛이 없어서, 그 날도 반찬가게에서 사온 된장찌개에 머위를 넣기만 했다. 씁쓰름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머위를 그대로 남겨놨고, 남편과 나만 먹었지만...
할매가 다듬은 머위를 한 움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한 쪽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무심코 말했다.
"참, 제피나무를 숨갔나?("심었니?"라는 뜻) 우리도 계속 숨갔는데("심었는데") 계속 죽어삐더라.("죽어버리더라") 제피, 저거 추어탕이나 된장 끓일 때 넣으면 된다. "
할매 말을 듣고 나무 이파리를 뜯어 코에 대어보니 향긋했다! 예전에 어느 추어탕 식당에 갔다가 우리 프랑스 남편이 제피가루를 맛보고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레몬그라스향과 비슷하다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런데 그 제피나무가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고 있었을 줄이야!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당 아주 작은 틈에 3년 전 즈음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날아와서 이 나무가 크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커졌다. 나는 그게 제피나무인지도 몰랐는데, 할매 말을 듣고 그제서야 제피나무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보니 국민학교도 안 나온 옆집할매는 한글도 못 깨친 까막눈이건만 제피나무와 머위가 뭔지도 알고 해먹을 줄도 안다. 나는 대학도 나오고, 유학도 다녀오고, 4개 국어를 읽고 쓰고 해도 지집 마당에 크는 제피나무도 머위도 분간도 못하고 있다.
두 세대씩이나 차이나는 80대 할매와 30대 새댁, 까막눈 두 사람이 이웃집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