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걱정하는 재미로 산다

by 이주리

울엄마는 평생을 내 걱정을 입에 달고 산다.


"너랑 나랑은 겁이 많아서 운전을 잘 못하지."

"애 낳고 힘들어도 직장을 어떻게든 놓으면 안되는데."

애를 둘 낳았을 때는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애를 둘이나 낳니? 하나만 낳고 편하게 살지."

애를 셋 낳았을 때는 "나도 애를 둘밖에 안 낳았는데, 둘만 키우는 것도 차고 넘치게 힘들었는데, 너는 왜 셋이나 낳느냐? 게다가 왜 12월생을 만드느냐? 왜 이렇게 계획없이 사냐? 혹시라도 넷 낳게 되면 다시는 너 안볼 줄 알아라. 피임을 해라. 피임 방법 알지?(그 이후에 장황한 설명)"

"니가 외고 가고 대학 가서 유학도 가고 했을 때 뭐라도 될줄 알았는데 이렇게 애 낳고 집에 들어앉을거면 다 쓸데없는 짓 했다. 외국 가서 얻은 수확은 외국인 남편 데려온 거 밖에 없네."

"왜 시골집에 들어가서 위험하게 지내냐. 창문 꼭 닫고 문 단속 잘하고."

"남편도 너도 육아휴직이면 수입이 없는데 뭘 먹고 사느냐. 지금이 한창 돈 벌 때인데, 애 키우는 것도 좋다마는 한참 돈 모아야 할 때인데..."

"애 낳았다고 퍼져 있지 말고 살 빼라. 밥도 너무 많이 먹지 말고. 특히 보약은 절대 먹지 말고. 내가 니동생 낳고 보약 먹어서 살이 안 빠져서 임신 몸무게 그대로 지금까지 안 빠졌잖아. 너 지금 몸무게 얼마니? 나하고 한번 재보자!"

"니가 외국 나가서 살까봐 너네 아빠는 술 먹고 맨날 그 소리 한다. 우리가 무슨 급한 일 있어도 딸이 당장 못오잖아. 딸이 멀리 가서 사는게 좋은 사람이 누가 있냐?"


기-승-전-니 걱정 하느라 내가 못 살겠다는 요지였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엄마한테 내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었다. 전화하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웠다. 저런 소리를 듣고 나면 세상에 없는 불효녀라도 된것 같아서.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올해 서른여섯), 아니면 시골에서 할매들을 차고 넘치게 봐서인지 엄마의 푸념 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니 걱정하는 재미로 산다"로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시골 할매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오로지 자식 얘기 뿐이다. 노년에 시골사는 할매들은 하루종일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일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이벤트가 없다. 눈 뜨면 해 떠 있고, 때 되면 삼시세끼 밥해서 먹을 뿐이다. 똑같은 일상이 지겹도록 반복된다. 할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 와중에 이야깃거리가 되는건 자식일이다. 젊은 자식들은 이벤트가 많다. 직장을 구한다고 공부를 하고, 이사를 다니고, 여행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해서, 집을 구해야 해서 돈이 필요하고, 차를 사고, 때때로 차를 바꾸고, 애를 낳고, 또 애를 낳고, 손주는 아장아장 걷고, 말을 하고, 학교를 가고, 배우자와 불화가 있고, 이혼을 하고, 경매로 집을 날리고, 차 사고가 나서 다치기도 하고, 병원에도 가고 그야말로 다채롭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뒷방늙은이 시골 할매들에게 자식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활기를 주는 이야깃거리가 되어주고, 그 자체로 삶의 이유가 되어준다. (참고로 시골할배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시골할배들은 대부분 먼저 돌아가시고 없어서다. 시골 와서 보니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사실을 몸소 느낀다.)


그러고보면 나도 애들 걱정하는 재미로 산다. 애들이 제 나이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는지, 학교에서 모습은 어떤지, 어린이집에서 적응은 잘하는지, 아프면 전전긍긍하며 병원에 데려가고, 티비는 적당히 보고 너무 많이 보면 안되는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데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어떤 장난감이 필요할지, 폰을 사달라고 졸라대는데 언제 사줘야 할지, 사주면 어떤 폰을 어떤 규칙으로 사줘야 하는지, 뛰면 안된다고 잔소리하며 키우기 싫어서 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왔는데 애 어릴 때야 좋지만 시골에서 계속 키우는게 맞는건지, 아토피는 시골 오면서 좋아진 것 같았는데 다시 도진 것 보면 언제쯤 좋아지는건지, 애들은 씻는걸 왜이리 귀찮아하고 싫어하는지, 집안일은 하루종일 종종거리는것 같은데도 항상 마무리가 되지 않는지, 내 손은 왜이리 느린건지, 요즘 애들 초콜렛, 사탕, 과자를 너무 많이 먹는데 안그래도 과체중인데 어떻게 군것질을 조절시켜야 할지, 충치가 더 생기진 않았는지, 내일은 또 무슨 반찬을 해줘야 하는지, 우리집 가계부는 언제쯤이면 여유가 생길지, 나는 언제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면 될지, 걱정이 끝이 없다.


나는 울엄마처럼 자식 걱정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살 줄 알았다. 외국물도 조금은 먹어본, 나름 배운 여성으로서 21세기에 프랑스 남편과 "아이 인생은 아이 것, 내 인생은 내 것"하며 쿨내나게 살 줄 알았다. 여느 엄마처럼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 말고. 나는 우리 엄마보다는 당연히 잘할 줄 알고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우리 엄마보다 잘하기는 커녕, 엄마만큼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리요. 이것이 엄마의 숙명인 것을. 걱정 안하는 엄마인 척, 대범하려고 세련된 엄마가 되어보리라 노력해보건만 속마음은 다름없다. 나도 결국은 울엄마처럼, 시골할매들처럼 아이들 걱정하는 재미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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