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가 되고, 시골에 와서 살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난다.
예전에 스물아홉까지 직장에서 해외영업 일할 때 국내 여기저기, 온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고객들이 국적도 다양하고, 나이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다 비슷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회사일을 하니 차림새가 다들 정장 비스무리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운전을 할 수 있으며, 최소한 대학은 나왔고, 외국어가 유창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어 알파벳 정도는 읽고 쓸 줄 알았다. 세련된 사회적 매너를 장착하고 있었다.
애엄마가 되고 주변 애엄마들과 소통하면서 고졸(고등학교 졸업)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특목고(외고)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동기 모두 어느 대학을 갈지 고민을 했지, 대학을 안갈 선택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고졸이든, 대졸이든 친하게 지내고, 대화를 하는데 큰 장애물이 있는건 아니다. 대학을 다녀봤던 사람에게 익숙한 토익 따위의 자격증, 취업 준비 경험이 없어서 이런 것을 대화 주제로 삼지 않는다는 정도. 결국 사람들 먹고 사는건 다 비슷하고, 애 키우는 것도 거기서 거기였다. 오히려 가방끈 길어서 머릿속에 쓸데없이 아는 것만 많아 더 불안하고, 조바심이 많아, 애를 더 못 키우는 건 내 쪽이었다. 나는 공부만 하고, 회사 생활만 해서 그런지 생활 지식도 부족하고, 살림도 빠릿빠릿하지 못한데다 요령도 없었다.
시골에 오고 이렇게 많은 노인들 틈바구니에 살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요즘 노인으로 치지도 않는 60대, 70대도 초졸(초등학교 졸업)이 있으며, 아직 한글도 깨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78세인 옆집 할매는 예전에 국민학교 2년 조금 다닌게 다고, 한글도 잘 모르신다. 나는 4개 국어를 하는 사람인데 바로 옆집에 살면서 학력이 이만큼 차이가 나는 것도 드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인의 직업과 재산 상황에 따라 사는 동네와 아파트가 정해지고,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같이 모여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옆집 할매하고 나는 친구처럼 잘 지낸다. 동네에서 만나는 유일한 친구이다. 보통 각자 마당에서 담 넘어 간단히 수다를 떠는데, 대화 주제는 반찬 뭐 해먹는지, 애들 학교, 어린이집 잘 갔다왔는지 그런 것들이다. 할매는 우리 애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담 넘어 지그시 감상하고 계신다. 꽃구경이라도 하는 듯이 함박 웃음을 머금고 지그시 감상하신다.
시골 와서 자가용 없이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내가 여섯살 때부터 자가용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올해 63세이신데, 여전히 운전을 하신다. 62세인 우리 어머니도 본인 차가 따로 있고 마찬가지로 운전하며 일을 하신다. 그래서 나는 운전면허는 성인이 되면 당연히 따야 하는 것이며, 특히 애가 있으면 당연히 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 시골 노인들은 대부분 자가용 없이 산다. 두시간에 한번 있는 시내버스를 타거나, 마을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콜택시를 불러서 다닌다. 택시 요금은 기본 만원부터 시작이다. 시골로 이사 온 도시 사람들은 기본으로 남편과 아내 각각 차를 두대씩 몰고 다니는데, 시골 노인분들이 자가용 없이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환경 보호에 이보다 도움될 수 있을까? 남편과 상의해서 우리도 본받아 우리 집은 차 한 대만 갖고 있기로 했다. 남편이 차 몰고 나가면 나도 여기 할머니들처럼 시내버스, 마을버스, 택시를 타고 다닌다. 내가 차 몰고 나가면 외국인인 남편도 마찬가지로 버스를 잘 타고 다닌다. 자가용으로 20분이면 갈 길을, 환승해 가며 구비구비 돌고돌아 1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간다. 그런데 생각보다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가면서 쉬엄쉬엄 바깥 풍경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