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과 유럽출장

by 이주리

결혼식이 다가 아니었다. 결혼식보다 더한 강행군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시댁 식구들이 어렵게 한국까지 결혼식 때문에 왔는데 그냥 두고 우리끼리 신혼여행을 가는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까지 총 10명이서 스타렉스를 빌려서 3박4일 한국 전국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 아버지가 운전을 맡으시고, 나머지는 모조리 내 담당이었다. 호텔 예약하고, 일정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통역과 여행가이드까지 나 혼자 다 했다. 시댁 식구들이 불어로 말해주면 남편이 영어로 전달하고, 내가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전달해서 부모님께 전하는 식이었다. 시댁 어른들이 우리 부모님한테 질문 하나라도 할려치면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건너건너 통역을 거쳐야 했다. 언어도 안 통했지만, 문화 차이도 문제였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시댁 식구들도 그렇고, 뼛속같이 한국인인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이 만나서 4일을 꼬박 같이 보내려니 쉽지 않았다. 경주 찍고, 안동 찍고, 서울 찍어야 하는 한국식 빨리빨리 여행 일정이었다. 사돈댁이 어렵게 먼걸음 하신만큼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은 우리 아버지의 배려였다. 하지만 지나가는 길고양이만 봐도 한참을 눈길 주고, 식사하러 가면 서너시간씩 떠들어야 하는 느긋한 프랑스 식구들 앞에 모든 계획은 엉켜 버렸다. 중간에서 이리저리 납득시킨다고 나도, 새신랑도 나서서 이쪽 문화는 이렇다, 저쪽 문화는 저렇다 설명 하고나니 목이 쉴 정도였다. 게다가, 나름 새신부인지라 시댁에 잘 보이고 싶어서 상냥하게 대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 모습에 내 딸이 남의 식구 다 되었다며 또 서운해 하셨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결국 여행 이틀째 되는 날, 몸살이 났다. 결혼 준비부터 결혼식, 가족 여행까지 쉼없이 강행군을 해오다보니, 지칠대로 지쳤던 모양이다. “저는 아파서 호텔에서 좀 쉴테니 알아서 식사하시고 구경하고 다녀오세요!” 시댁 식구들은 쿨한 프랑스 동네에서 오신 분들답게 자신있게 길을 나섰지만, 우리 부모님은 영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나중에 그 날 남편한테 어땠는지 물었더니, 내가 없으니 더 분위기가 좋았댄다. 다같이 포장마차까지 가서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벌개진 얼굴로 허허허 하는 웃으며 자정이 다 되서 들어왔다.


여차저차해서 가족 여행을 마치자마자 나는 2주 정도 되는 일정으로 유럽 출장을 홀로 떠났다. 당시에 외국회사에서 영업직을 맡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본사에서 25주년 기념행사가 있어서 참가해야 하는데다, 주최하는 독일 전시회 가서 거래처를 둘러 보아야 했다. 항공권이 마침 영국 런던을 경유하길래 3일을 휴가 내서 영국을 자유여행하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입이 딱 벌어질만큼 타이트한 일정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빠듯하게 일하고, 여행했다.


독일 전시회에 갔다가, 네덜란드 본사에 가서 일을 마친 후, 25주년 기념 사진 촬영을 했다. 그때부터 신나게 파티를 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65개 국가 출신 전직원이 모이니 마치 만국박람회 같았다. 그 중에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마음껏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사진을 찍고, 깔깔 웃어대며 수다를 떨었다. 레스토랑에서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잠이 마구 쏟아져서 나도 모르게 식탁에 머리를 박고 깊은 잠에 빠져서 동료가 깨운 것 말고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제서야 결혼식, 가족 여행, 유럽 출장까지 모든 공식적인 일정이 끝이 났다. 이제는 나만의 달콤한 휴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주말을 보낸 다음, 영국으로 건너가 3일 정도 머무를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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