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각방생활(2)

by 이주리

"그래. 우리가 각자 잔 건 맞아. 근데 그건 애들 땜에 그런거고 이제 같이 자야지."

"나 자기랑 같이 못 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한번씩 이 여자가 정말 한국여자가 맞나 싶다. 한국 여자들은 남편 의견에 토도 잘 안 달고, 잘 맞춰주고, 애교라는 것도 있다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내는 그런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아내가 남편한테 같이 못 잔다고 저렇게 당당하게, 저렇게 당연하게 말할 수 있다니!

"생각해봐. 자기는 열이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걸핏하면 에어콘을 틀어 대잖아.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괴로워. 그리고 자기 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넷플릭스 밤12시까지 보고 자잖아. 나는 폰 불빛 있으면 못 자."

사실은 사실인지라 대꾸할 말이 없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 방, 내 방 따로 있으면 각자 하고 싶은거 하고 각자 편하게 자면 좋잖아. 나는 내방에서 하고 싶은거 하다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애들이 나랑 같이 자고 싶어하면 애들도 내방에서 같이 자고. 자기는 넷플릭스 맘껏 보고 자. 이 참에 자기 방에 컴퓨터를 아예 넣자. 컴퓨터로 넷플릭스를 봐. 폰으로 영상 오래 보면 눈에도 안 좋고."

"자는 방에 컴퓨터를 왜 넣어? 내가 원룸생활하는것도 아닌데... 지금도 괜찮은데 왜 굳이 방을 바꿔야 돼? 그리고 부부가 각방 쓰면 안되는 거잖아."

"여보, 이제 좀 솔직해지자니깐. 우리가 지금까지 이혼 안하고 비교적 잘 살고 있는건 각방 쓰고 있는 덕택인거 몰라? 우리가 한방 썼어봐. 맨날 에어콘을 트네마네 하면서 싸우고, 옆에서 코를 고네마네 하면서 싸우고, 폰 많이 본다고 잔소리하고 그랬을거 아니야. 자기 기억 안나? 전에 내가 잘때 숨을 크게 쉬어서 숨소리 거슬려서 못 잔다고 그랬잖아!"

연애할 때는 이 여자가 똑똑해서 좋았다. 기억력도 좋고, 책도 많이 보고, 언어도 몇개 국어를 하고, 그것도 내가 몇년을 노력해도 도무지 늘지 않는 중국어가 유창하고, 한자를 척척 읽어낼 때는 멋져보이기까지 했다.

9년을 알아온 지금은 아내 기억력이 심히 부담스럽다. 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다음날이면 잊어버리는데, 아내는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걸 적재적소에 써먹고 매번 나를 KO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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