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갖기 전에는 문명인처럼 살 수가 있었다. 옷도 흰색, 노란색, 빨간색, 기분따라 알록달록 입고 다니고, 실크처럼 나풀거리는 재질도 입고, 어울리는 귀걸이 같은 장신구도 하고, 뾰족한 힐도 또박또박 신고 다녔다. 밥 먹을 때도 뭐 먹을지 메뉴를 찬찬히 고르고, 밥먹는 중간에 방해 받지 않고 우아하게 먹고, 음악도 지그시 눈감고 감상할 수 있고, 책도 앉은 자리에서 쭉 읽어내려 갈 수가 있었고,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콧노래를 부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수 있었다. 피아노나 우쿨렐레, 영화 보기 같은 취미도 빠지면 몇 시간이고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부터는 그야말로 원시인이 됐다. 머리는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긴 머리를 공들여 감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말리고 드라이 할 만큼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에이, 머리 말릴 시간도 없다고요?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진짜다. 나도 애 낳고나서 왜 아줌마들은 다들 짦은 파마머리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머리 감고 말릴 시간이 있다면 잠을 더 자고, 반찬이라도 하나 더 만들겠다. 그런데 화장도 안하고, 편하다고 남편 티셔츠를 빼앗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머리까지 짧으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남자였다. 이러다가 진짜 남자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성별 구별용으로 머리는 기르기로 했다. 남편도 긴 머리를 간절히 바랬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머리 주구장창 길러서 질끈 묶고 다닌다. 집안일 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머리띠로 앞머리 촥 넘기고.
그노무 젖은 하루에 절반 정도는 내놓고 있었다. 아기가 시도때도 없이 젖을 물어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는 왜 그리도 울어대는지 지칠대로 지쳤던 나는 애가 울기만 하면 무조건 젖을 내밀었다. 나는 이 방법을 만사젖통이라고 불렀다. 잠시라도 조용하니 살것 같았다. 나는 우는 아기 입을 언제든 젖으로 3초 안에 틀어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기가 움직일 수 있는 개월수쯤 되고나니 밤에 잘때 아기가 스스로 내 윗옷을 젖히고 찌찌를 찾아서 먹고 잤다. 그 광경은 흡사 침팬지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하고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 애 낳기 전까지만 해도 젖이라는 단어는 써본 적도 없다. 가슴은 그저 장식용으로 달려 있었고, 옷맵시용으로 신경쓰는 정도였는데…
옷은 기능을 제일 먼저 따지게 되었다. 젖물리기 편한 옷인지부터 가장 먼저 따졌다. 예전에는 원피스를 입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원피스는 수유할 때 가장 불편한 옷이다. 그래서 가슴 앞섶을 풀어헤치기 쉬운 단추로 된 셔츠를 주로 입고 다녔다. 아기가 항시 내 옷에 뭘 흘린다. 아기는 침이나 젖, 간식, 쉬, 똥 같은 분비물이 많이 묻히고 다닌다. 그래서 세탁기 물빨래가 되는지가 중요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더러워져도 바로 티가 안나는 회색이나 남색 같은 색깔을 선호하게 되었다. 에이 뭐 그 정도냐고 왜 그렇게까지 궁상떠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된 계기가 있다.
생후 2개월된 아기를 데리고 첫 외출하던 날이었다. 별 생각없이 예전처럼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갔는데 그날따라 식당에서 밥 먹는내내 아기가 안 칭얼대고 잘 있길래 “아기 데리고 외출 할만하네!”하면서 우쭐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밥먹고 일어설려는 찰나, 글쎄 아기가 내 셔츠에 똥칠을 해 버렸다. 똥을 얼마나 눴는지 기저귀가 넘치도록 눴다. 초보엄마라서 기저귀를 제대로 안 채운 엄마 잘못도 있다지만, 게다가 모유를 먹는 아이들은 똥이 묽어서 흰 셔츠에 염색한 것처럼 색이 스며 들어버렸다. 물티슈로 아무리 닦아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똥냄새를 풍기며 급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리 열심히 세탁을 해도 새하얀 옷에 남은 똥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하얀 옷은 입은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집 아기들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정말 신통방통하게도 유난히 밥먹을 때마다 똥을 눈다. 그래서 밥먹다 말고 아이 기저귀를 치우러 가거나,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똥 다눌 때까지 보초를 서야 하고, 기다렸다가 똥 다 누면 닦아줘야 한다. 밥을 맛있게 먹다가 중간에 똥 때문에 한참 맛있게 먹던 리듬이 끊기고 나면 먹기 싫어진다. 그건 육아 초기에나 그랬고, 사실 지금은 애가 밥먹다가 혼자 조르르 아기 변기에 가서 똥을 눠도 우리 부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이고, 우리 애기 똥 잘누네! 바나나 똥 눴네! 잘한다!”하면서 말로 폭풍 칭찬해 주고, 먹던 밥 맛있게 먹는다.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원시인 가족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