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자들 다들 그렇겠지만 아기 낳기 직전까지만 해도 20대는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하는 시늉을 착실히 했다. 그러다 대학 가면서부터는 원없이 마음대로 하고 살았다.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특히 공부하고 상관없는걸 많이 했다. 한동안은 밸리댄스에 재미를 붙여 열정적으로 춤을 배워서 몸매를 과시하는 화려한 옷을 입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화 동아리 사람들하고 카페에 몇시간이고 앉아서 뜬구름 잡는 철학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기도 했다. 국토대장정도 했다. 알바도 이것저것 해보고, 뜬금없이 중국 유학도 갔다. 해외 여행도 열심히 다녔다. 그 와중에 프랑스 남자하고 연애도 진하게 해서 부모님 3년동안 반대하시는거 무릅쓰고 우리 같이 있게만 해주세요 하며 사랑에 목숨 거는 그런 로맨스 영화도 절절하게 찍어봤다. 직장도 운좋게 중국 상해라는 대도시에서 유럽회사를 다니게 되었는데 덕분에 해외출장도 많이 다니고, 3개 국어 나불거리며 정장 입고 잘난척 하고 다녔다. 긴 머리 나풀거리며, 그때는 나름 패셔니스타였어서 핏 맞는 옷 쇼핑이 취미였고, 신경써서 입고 다녔다. 그렇게 내 잘난 맛에 살았다.
그러다 우리 사랑의 결실, 애를 낳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졌다. 아이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단, 의식주 같은 기본 생활 자체가 어려웠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목욕을 하는 그런 기본적인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는 항상 내 몸에 안겨서 젖을 물거나, 자거나 했다. 내려놓으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베개 속에 쏙 들어갈 정도로 이 작은 아기가 울음소리는 왜 이렇게 큰지 잠시만 울어도 귀가 먹먹했다. 아기 울음소리가 날더러 나쁜 엄마라고 자책하는 것만 같았다.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밥숟가락 들을때도 안고, 화장실 갈때도 안고, 잠잘때도 안고, 아기와 한몸이 되어 지냈다. 캥거루가 따로 없었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부터는 직장 생활도 해야 했다. 애엄마에 대한 회사 배려로 기본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되, 업무상 필요하면 외근이나 출장을 가야 했다. 그런데 재택근무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돌보미 아줌마가 와서 거실에서 아이를 돌보고, 나는 방에 들어가 컴퓨터로 회사일을 했다. 그러면 아기는 방문 앞까지 어떻게든 기어와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돌보미 아줌마가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두시간을 일하면 아기는 두시간 내내 울고 있었다. 끔찍했다! 외근이나 출장을 가면 아기를 친정에 맡겼는데, 젖이 찰대로 차서 화장실에 가서 짜 버리고 있으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나만 찾으며 울고 있을 아기에게 미안했고, 우는 아기와 씨름하고 있을 친정엄마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까짓 직장이 뭐라고 아기와 친정엄마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나 싶었다.
회사일은 회사일대로 되지 않고, 육아는 육아대로 되지 않았으며,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되지 않았다. 남편은 본인이 사랑에 빠졌던 예전의 그 상냥하고 자신감 넘치고 멋지던 그 여자를 그리워 했지만, 그 여자는 진작에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산더미같은 집안일과 육아와 회사일 앞에 넋이 나가버린 미친 아줌마만 있을 뿐이었다. 긴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말리는 것도 사치라서 머리를 아주 짧게 커트해 버린 여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남편이 무슨 말만 하면 바득바득 대드는 아내. 아기 밖에 몰라서 아기가 울기만 하면 용수철처럼 튀어가는 엄마. 얼굴에 생활 때가 잔뜩 낀 아줌마가 그렇게 집구석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