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더러 희생을 하라구요?

by 이주리

임신을 하기 전에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다. 사전적인 의미야 물론 알고 있었지만, 희생은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였다. 철저히 나만 위해서 살아왔다. 섹스앤더시티에 사만다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는 장면이 있다.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해(I love you but love me more)” 나도 그랬다. 스물일곱 짧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아무도 날더러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요구한 적 없었다. 차려주는 밥 먹고, 옷장에서 깨끗한 옷 꺼내 입고 나가면 되었다. 어릴 때는 학교를 갔고, 커서는 직장을 갔다. 학교에서는 말썽 안부리고, 친구들과 무난하게 잘지내고, 공부만 잘하면 되었다. 직장도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동료로 바뀌었고, 공부가 회사 업무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가끔 봉사활동도 하고, 기부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했기 때문에 취미 생활에 가까웠지, 큰 희생 정신이 필요 없었다. 학교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지만, 무난하고 적당히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직장에서도 자기가 맡은 업무를 묵묵히 성실하게 해내는 직원이었다. 목표를 정하고 성취를 향해 매진하고,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살았다. 일과 더불어 연애에서도 희생하지 않았다. 내가 괴롭거나, 힘이 들면 헤어졌다.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삶은 내가 계획한대로, 원하는대로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그때만 해도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쉽고, 단순한 건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뱃속에 아기가 생기면서부터 모든게 엉켜 버렸다. 입덧부터 시작해서 임신성 비염(둘째때는 임신성 부비동염), 임신 막바지가 되면 빈혈이 너무 심해서 외출도, 운전도 버거웠다. 아기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직장일이 버거웠다. 첫째는 임신했을 때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소견이 나와서 양수검사(배에 엄청 굵은 주사를 꽂아서 양수를 쭉 뽑아내서 유전자 검사해서 다운증후군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까지 해야 했다. 다행히 첫째는 다운증후군이 아닌걸로 최종 결과가 나왔지만, 검사 과정과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했던 마음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이 아기가 뭐라고, 내가 여태까지 쌓아온 계획과 대단한 커리어도 아니지만 나름의 커리어, 삶의 방식이 모두 헝클어져 버렸다. 아기는 항상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내가 더 중요해요, 엄마 직장이, 건강이, 친구가, 취미가 더 중요해요? 당연히 내가 더 중요하죠! 안 그래요?”라고 뱃속에서부터 소리치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채 나오지도 않은 아기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아이에게 졌다. 아이를 키우느라 커리어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 버렸다. 워킹맘이 대세래서 해봤더니, 워킹맘은 도저히 내 능력으로 해낼 수 없었다. 몸은 애 둘 낳고 후덕해졌으며, 지인과 친구들은 챙길 여력이 없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며, 4개 국어 하던 총명함과 피아노니, 비올라니, 우쿨렐레니 하던 그 많던 취미는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아이들 세끼 해먹이느라 하루종일 부엌을 벗어나질 못한다. 그렇게 종종 거리고 다닌다. 나도 알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사춘기가 되어서 되잖은 짓을 할테고, 그러면 나는 “엄마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진부한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겠지. 사실 엄마는 아이가 원망스러워서 그런 소리를 하는게 아닌데, 그저 내 젊음을, 건강을, 일을, 인생을 포기할만큼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뿐인데. 물론 아이는 “누가 희생하라고 그랬어? 엄마가 스스로 결정해놓고 왜 내 탓이야!”하면서 달려들겠지. 내가 예전에 우리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된 거지만, 아이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클 수가 없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이집 선생님, 돌보미 아줌마, TV 뽀로로, 스마트폰 유튜브 등 그 무엇이 되었든, 아이는 누군가의 피와 살과 시간을 잡아먹고 자란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 내가 보인다. 수없이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안아주고, 눈맞추며 노래 불러주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 인생 속에 내 인생이 들어있다. 그것도 가장 반짝반짝 빛나고, 화려하던 젊은 날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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