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성 병에는 약도 못쓴다

by 이주리

이렇게 못먹는데 사람이 살 수가 있나 싶을 때쯤 거짓말처럼 입덧이 사라졌다. 언제 입덧이 있었냐는듯 입맛이 예전처럼 돌아왔다. 아니, 예전보다 입맛이 더 돌았다. 이제까지 못 먹어서 생긴 한이라도 풀겠다는 듯이 먹어댔다. 아기가 먹고 싶어하는 거라는 핑계로 남편을 불러서 무엇이든 머리에 떠오르는건 다 먹었다. 그래, 여자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하게 먹고 살찔 수 있는 시기가 임신이라고 하지 않더냐. TV 드라마에서 본건 있어가지고 한겨울 오밤중에 남편 시켜 수박 사오게 고생시키는 임산부 아내 노릇을 꼭 해보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지지리도 몸 상해가며 엄마가 되어 가는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아무 것도 안하고 ‘아빠’라는 타이틀을 너무 쉽게 날로 먹는 것 같아 배알이 꼴렸다. 그래서 “임신한 아내한테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하면서 한국 생활도, 한국말도 서툰 남편을 부지런히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령하라고 부려 먹었다.


서서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똥배인지 임신한 건지 헷갈릴 정도가 되어갔다. 배만 볼록 나온 ET가 되어가는데 무슨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입덧만 안해도 살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또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코에서 쉬지않고 콧물이 흐르는데다, 심지어 코피가 계속 났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임신성 비염’이란다. 아기가 점점 커져서 엄마 신체 기관에 압력을 주니 예전처럼 기능을 하기가 어렵고, 코에도 압력이 높아져서 비염이 생기고, 코피가 나는 건데, 임신성 증상이고, 임신하는 중에는 약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코 세척 잘해주고 무리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병원에 갔다가 처방전도 안 받고, 약도 안타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증상이 자연스럽게 호전될 때까지 항상 콧구멍에 휴지를 막는 수 밖에 없었다. 콧구멍에 휴지를 꽂은채로 직장일을 했다.


그래도 첫째때는 임신성 비염에 그쳤지만, 둘째때는 더 심각한 임신성 부비동염이었다. 부비동염은 코가 막히고 목이 너무 많이 부어서 밥 한 숟가락도 못삼킬 정도였다. 부비동염은 지금까지 으레 겪어왔던 편도선염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이 욱신욱신 아팠고, 일상 생활이 어려웠다. 이번에도 내과나 이비인후과에서는 ‘임신성’ 질환이기 때문에 약을 쓸 수 없고, 임신이 끝나야 해결된다는 속터지는 말만 해줬다. 그런데 둘째 임신했을 때는 가만히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전히 첫째 밥을 챙겨야 했고, 집안청소와 빨래는 산적해 있었으며, 장을 보고, 운전해서 첫째 어린이집 등하원을 해야 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 가서 의사한테 호소했다. 제발 죽겠으니 임산부에게 쓸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달라고. 그런데 그 약을 먹고도 좋아지지 않아서 다시 산부인과를 찾아서 임산부 먹을 수 있는 약 중에 센 걸로 처방해 달라고 다시 사정을 했다. 이러다 죽을 지경이라고. 센 약이 들었는지 겨우 나았다.


그러고보면 나만 유별난가 싶은데, 내 여동생도 임신했을때 고생을 많이 했다. 동생은 어릴적부터 아토피가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는 거의 완치가 되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두드러기가 많이 났다. 특히 얼굴에 반쯤 두드러기가 덮혔는데 가렵고, 따갑고, 번지기까지 해서 큰일이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임신해서 약을 못썼다. 더군다나 피부과 약은 독해서 임산부한테는 특히 못쓴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2주동안 입원해 있었다. 겨우 나아서 퇴원을 했다. 임신을 안 겪어본 사람들은 임신이라는 행위가 만삭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배만 예쁘게 나오는 건줄 안다. 아기를 품어본 엄마들은 그 지난한 열달을 기억한다. 내 몸을 축내가며 생명을 열달동안 품어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그 시간동안 만큼은 결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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