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고 보니 너무 작고 연약했다. 아기는 키가 고작 50cm이고 몸무게는 3kg 남짓밖에 안되었다. 그게 얼마나 작으냐면 어른 베개에 올려놓으면 베개가 침대처럼 쏙 들어가는 크기이다. 베개 위에서 쌔근쌔근 자는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작은 엄지공주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어떻게 190cm가 넘는 남편같은 거구가 될 수 있는걸까 믿을 수가 없었다. 한번은 아기 앞에서 나도 모르게 재채기가 나왔는데, 그 때 아기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전 처음 재채기 소리를 들어보는 이 작은 아기는 큰 일이라도 난줄 알고 깜짝 놀라 온 몸에 힘을 주고 앙앙 울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은 아기가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의 모습이 되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밤낮을 구별해서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는 깨어 있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어른이 먹는 밥과 반찬을 도구를 이용해서 흘리지 않고 떠먹게 되기까지, 용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혼자 볼일을 보고 뒷처리를 하게 되기까지, 말을 알아듣고 납득하게 되기까지는 2, 3년이 훌쩍 더 걸린다. 친구들과 울고 싸우지 않고 해결하게 되기까지, 글을 배우고 책을 읽게 되기까지는 더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해져 버린 것들이지만 아기들에게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기들이 마치 태어나자마자 혼자 옷 입고, 화장실 가고, 다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잘난 체를 한다! 본인들도 아기 때 이불에 쉬싸고, 밤낮없이 울었을 거면서…
이제는 디지털 시대이다. 대부분의 사무직들은 컴퓨터로 일을 하고, 기계와 스마트폰을 상대한다. 거래처나 동료와 업무 이야기를 나눠야 한데도 직접 만나는 일은 드물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화를 하거나, 각종 업무용 메신저나 카톡, 이메일, 화상통화 등을 통해서 소통한다. 그런데 아기들은 그게 안된다. 엄마를 찾으며 자지러지며 우는 아기에게 카톡으로 “엄마가 퇴근하고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는 메시지로 달랠 수 없다. 전화 너머 목소리로도, 화상통화로도 달랠 수 없다. 아기는 아직 시간을 모르고, 기다릴 줄도 모른다. 아기에게는 지금 당장 나를 포근히 안아주고, 내가 원하는 젖을 줄 수 있는 엄마가 필요할 뿐이고, 엄마가 올때까지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른다.
첫째가 세살쯤 되었을 때, 남편이 해외 근무를 발령받아서 먼 아프리카로 가야 했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 현지 치안 문제 때문에 온가족이 아프리카에 이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첫째와 둘째 만삭인 몸으로 한국에 있기로 했다. 남편이 3개월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2주 한국에서 쉬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아프리카로 가고 나서 첫째가 아빠가 보고싶다며 하루종일 울었다. 매일 저녁마다 화상통화를 하며 100밤 자고 나면 아빠가 올 것이고, 아빠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고싶어 하는지 설명했지만, 첫째는 그런 추상적인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자기를 안아주고, 같이 놀아주고, 재워주던 아빠가 눈앞에 당장 필요했다.
3주 정도 지나니 아이는 아빠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화상통화를 해도 시큰둥했다. 3개월 지나고 남편이 2주동안 한국에 쉬러 왔는데, 아이는 아빠가 낯설어 어쩔줄 몰라했다. 남편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이대로 아빠를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렵지만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그래야 아프리카에 안가고, 아이와 일상을 같이 할 수 있었다. 예정에도 없던 육아휴직과 이직으로 돈은 확실히 못 벌었지만, 대신 시간을 벌었다. 아이가 아빠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옆에 같이 있어줬고, 추억을 쌓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으로, AI로, 기계로, 로봇으로 안되는 일은 없다는데, 육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패드를 왔다갔다 하며 돈 벌고, 돈 쓰며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다가, 갑자기 원시 시대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 아기 똥기저귀 치워가며, 젖 물려가며, 노래 불러가며 재우는 일은 어색할 뿐더러,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기는 나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 세계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지리 궁상맞아 보였어도 우리끼리만 통하는 무지개 같은 비밀 세계가 그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