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기 이전의 나는 꽤나 도도하고, 차갑고, 냉정한 인간이었다. 스무해가 넘도록 겪어온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삶에 임하는 자세 자체가 시큰둥했다. 삶에 대단한 의욕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열정과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였을지언정 실은 속으로는 허무할 때가 많았다. 내가 이대로 삶을 마감한다 해도 세상은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는 이대로 죽는데도 큰 아쉬움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탱했던 이유 단 한가지는 부모님과 내 동생 때문이었다. 내가 죽으면 너무 슬퍼할까 봐서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살아냈다.
그러다가 아기를 낳았는데, 하루종일 엄마, 엄마, 엄마만 찾았다. 처음에는 엄마라는 굴레가 지긋지긋했다. 아기가 나한테 목줄을 챙챙 감아서 집구석에 묶어 놓은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기가 조금씩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더니 한번은 문득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엄마, 제일 예뻐! 좋아해!”라고 말해 주었다. 반찬도 몇가지 없는 볼품없는 밥상 앞에서 “맛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별볼일 없는 나에게 아기는 매번 과분한 천사 같은 말을 해 주었다. 세상에 천사가 존재한다면 그 천사는 이런 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날더러 이렇게 천사만 안고 시시덕거리도록 놔두지를 않았다. 여전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이런 천사를 떼어놓고 여전히 돈을 벌러가야 했다.
출근길에 엄마 품에서 떨어진 천사는 온 몸을 비틀어대며 자지러지게 울었고, 집에 들어서면 아직 걷지도 못하는 천사는 있는 힘껏 열심히 기어와서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얼굴로 내 품에 안겼다.
여전히 삶은 때로는 괴롭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허나 이제는 감히 죽음을 떠올리는 것조차 하면 안되었다. 내가 죽으면 이 가여운 아이는 ‘엄마없는 아이’가 된다. 울 때도 ‘엄마, 엄마’를 찾으며 울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없어지면 이 가여운 작은 생명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칼과 총이 오가는 살벌한 전쟁터라 할지라도 온몸으로 내가 다 받아내며 어떻게든 내 품 안의 이 작은 생명을 지켜야 하는 숙명이 내게로 왔다.
엄마가 되면 애 뒷바라지도 힘겹고, 노키즈존이 나날이 늘어가는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도 서럽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상쇄할만큼 좋은 점이 있다. 나날이 커가는 생명을 바로 곁에서 두고 지켜보고, 보살핀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을 선사하는지 모른다. 첫째가 태어났을때 아기를 지긋이 바라보시던 우리 엄마, 아빠 표정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토록 넋놓고 좋아하시는건 처음 봤다. 내가 이제까지 어떤 학문적 성취, 직업적 성취를 이루었을 때도 그 정도로 좋아하시지는 않았다.
우리는 일개 장미꽃 만발한 것만 봐도 감탄하곤 하는데, 하물며 사람꽃은 어떠하랴. 우리 첫째는 꽃봉우리 같고, 둘째는 새싹 같다. 첫째와 둘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얼굴도 보이고, 남편 얼굴도 보이고, 시어머니 얼굴도 보이고, 친정 엄마, 아빠 얼굴도 보인다. 참으로 오묘하다. 내 예전 사진을 보고 있으면 지금 얼굴하고 비교되서 속상한데, 첫째 얼굴에 얼핏 내 젊은 시절 모습이 스친다. 나는 늙어갈지언정,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시간이 지나는게 야속하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주는 활기가 있다. 아이들이 있어서 사는 이유가 생겼다. 아이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건강을 챙기고, 돈을 벌고, 부지런히 나들이를 간다.
흔히들 부모가 희생해서 키우고,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 그 반대다. 아이가 나한테 사랑을 준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 아주 많이 준다. 아직 어떤 세상의 풍파를 겪어보지 않은 이 순진무구한 아가는, 지나가는 재채기 소리에도 깜짝 놀라서 앙앙 울어대는 이 연약한 아가는 나에게 아낌없고, 꾸밈없는 사랑을 무한정 준다.
직장 갈 때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가면 아기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엄마 엄마 꺼이꺼이 울고, 직장에 다녀와서 집에 들어서면 아기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며 있는 힘껏 빨리 기어 와서 나를 안아준다. 나한테 엄마, 엄마, 말 걸어주고, 시도때도 없이 뽀뽀해주고, 나를 닮았다며 공주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준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계산 없이 순수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어디에 누가 나를 이토록 간절히 필요로 한단 말인가?
아기가 오기 전에 내 삶은 흑백처럼 단순했고, 그제가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 같았던 지루한 나날이었는데, 이렇게 아기와 함께 총천연색 세상이 나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