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책임감이라고 해두죠

by 이주리

임신했을 때 친한 선생님께서 축하 선물로 책을 몇 권 사주셨다. 모두 태교와 임신, 육아에 관한 책이었는데, 그 중에 <모신(母神)>이라는 책이 있었다. 모성은 본능이고, 엄마란 존재는 말할 수 없이 숭고하며,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것이 엄마라는 내용이었다. 같은 내용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짜증이 났다. 모신이 되라고 강요하고 세뇌하는 것만 같았다. 일개 중생에 불과한 내가 임신 한번 했다고 갑자기 신(神)이 될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작가가 누구인가 해서 보니 중년의 남자였다.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전적으로 안 해 보았을 사람이라서 더더욱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아기를 낳던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반나절이 훨씬 지나도록 지독히 진통을 앓았다. 막판에 아기가 나올 무렵에는 아기가 내 뱃속에서 톱니바퀴처럼 허리와 골반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아기는 뱃속에서 나올려고 계속 움직이는데 내 등뼈가, 허리가 그대로 끊어질 것만 같았다. 애가 뱃속을 여기저기 휘집고 다니는 진통이 열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고, 욱욱욱 토를 심하게 했다. 하루 왠종일 먹은 거 하나 없는데 노란 위액까지 계속 게워내고나니 입고 있던 환자복이 모두 젖어 버렸다. 내가 불쌍해서 눈물이 주르륵 났다.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환자복을 새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진통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진맥진해 있는데 간호사들이 날더러 힘을 똑바로 못준다고 호통을 쳤다. 이제 곧 아기 나온다며 간호사가 다급하게 소리치더니, 내 손과 내 발을 침대에 다 묶기 시작했다. 내 사지가 침대에 묶이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공포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살려 주세요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죽어가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제 곧 회음부 절개를 할거에요. 다 됐어요. 예쁜 아기 이제 볼 거에요.”라고 간호사가 다정하게 말해 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는데 구세주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의사가 가위로 싹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엄청난 양의 액체(피와 양수)가 아래쪽으로 철철 흐르는 느낌이 났다. 아프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같지가 않았다. 나는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도저히 안 나올 것만 같던 아기가 드디어 세상밖으로 나왔다. 어찌나 앙앙하고 우는지, 이렇게 시끄러운 아기가 뱃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조용하게 있었던 걸까? 옆에서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간호사가 목욕물에 아기를 씻기고 수건으로 닦았다. “아기 몸무게가 3.6킬로네요. 엄마 한번 안아보세요. 아기한테 하고 싶은 말, 해 보세요.”라며 내 가슴에 아기를 안겨줬다. “안녕” 그보다 근사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큰 아기가 내 뱃속에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간호사가 남편더러 아기에게 노래를 해주라고 했는데, 남편은 그저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기가 세상밖으로 나온지 3일되던 날, 산부인과에서 퇴원을 했다. 아기가 찬 바깥바람 쐴까봐 속싸개, 겉싸개 겹겹히 싸서 남편이 안고 나가는데 마치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미리 준비해둔 아기 바구니 카시트에 아기를 조심스레 눕히고는 “아가야, 이제 우리 집에 가자!”하면서 속삭였다. 병원에서 집까지 10분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잠시라도 아기가 내 눈 밖에 있으면 걱정이 되었다. 나도 아기 옆에 앉아서 곤히 자는 아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며, 아기는 자주 울었고, 다쳤고, 아팠다. 맞벌이를 했는데, 직장일은 직장일대로 안 되는 것 같고, 애는 애대로 못 키우는 것 같았으며, 집안은 항상 난장판이었다. 친정에, 시댁에, 가사도우미에, 아기 돌보미에, 어린이집에 매번 굽신굽신해야 하는 이 상황이 서러웠다. 사는게 너무나 고달프고 힘이 들어서 다음날 눈뜨기가 두려웠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육아에 우리 부부는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났고, 걸핏하면 싸웠다. 아기가 미웠지만, 아기한테 화낼 수는 없었다. 화내기에는 아기는 너무 연약했고, 때로는 너무 귀여웠다. 남편이 좀더 집안일에, 육아에 헌신적이었으면 했다. 남편도 제 딴에는 한다고 했겠지만 그래도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나한테 괜한 트집을 잡았다. 부부사이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렇게 8년이 지났다. 우리 부부는 현실에 순응해서 지내고 있다. 여전히 가끔은 싸울 때도 있다. 하지만 같은 문제로 열올리며 싸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예전만큼 싸우지는 않는다. 집은 여전히 개판 오분전이고, 밤에는 여전히 잠을 못자며, 아이들은 여전히 손이 많이 가지만 남편이나 나나 묵묵히 제 할일을 할 뿐이다. “애를 어떻게 둘이나 낳을 생각을 했어? 정말 존경스럽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대단한 모성애와 부성애를 갖고 애를 낳은 건 아니다. 어쩌다 애를 둘 낳았지만 치밀한 계획도, 웅장한 포부도 없었다. 그저 선물처럼 아기가 왔고, 딱히 안낳을 이유도 없기에, 낳은 것 뿐이다.


아이를 둘 낳았지만, 나는 갑자기 뿅 모신이 되지 않았다. 아기는 우리를 필요로 했고, 우리는 이 작은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만큼 해볼 뿐이었다. 그저 함께 보낸 시간만큼 아기는 나를 엄마로 길들였고, 남편을 아빠로 길들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괴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찬 순간도 있었다. 애 때문에 힘이 들어 죽을 것 같던 순간도 있었지만, 애 덕분에 살맛나는 순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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