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빠가 된다

by 이주리

우리 남편 취향은 전형적인 아버지상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공포, 스릴러 영화광에다가, 음악도 메탈 음악만 듣는다. 메탈 음악 감상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10대, 20대에 프랑스에서 메탈 밴드에서 기타를 치기도 했다. (메탈 음악이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가사나 멜로디 없이 거의 고함 치고 목구멍 긁는 소리를 주로 내며, 너무 시끄러워서 메탈 음악을 틀어 놓으면 아예 옆사람 이야기가 안들린다고 봐야 한다.) 우리 남편은 메탈 정신에 따라 옷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색만 입는데, 주로 윗옷에는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걸치는 외투는 검정 가죽잠바다. 그것도 10년전 중국 짝퉁시장에서 비싸게 주고 샀던 할리 데이빗슨 가죽잠바. 그 당시 여자친구였던 내가 그 짝퉁 시장주인하고 몇 시간동안 실랑이해서 나중에는 사정하다시피해서 거의 반값에 구입을 했다. 그때 주인이 이 가죽잠바는 짝퉁 아니고 정품이라고 수없이 말했는데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입고 있는 걸 보면 정품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아무튼 키도, 덩치도 너무 큰 사람이 밤에 그 꼴로 다니면 거대한 저승사자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첫째 낳았을 때 남편이 할리 데이빗슨 오토바이도 샀었다. 애아빠가 그걸 사서 어쩔 거냐며 애엄마인 나는 이모양 이꼴인데 너는 그걸 타고 다닐 정신이 있냐며 열 올려 싸우던 기억도 난다. 한때는 문신을 하겠다고 나서서 내가 거의 이혼을 불사하고 말렸다. 문신은 개인 취향이지만 내 남편이, 특히 애아빠가 문신하는 건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결국 문신 대신 피어싱과 머리 기르는 걸로 협상을 했다. 지금 우리 남편은 우리 집 세 여자보다도 훨씬 더 길고 찰랑거리는 금발을 찰랑거리고 다닌다. 수염도 엄청 풍성하게 길렀다. 급기야 첫째와 둘째는 예수님 사진을 가리키며 “아빠다! 아빠, 아빠”라고 하기까지 했다.이렇듯 우리 남편은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아버지상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마이너한 취향이 너무나 독특하고 분명해서 주변에 모이는 사람은 애아빠가 거의 없었다. 간혹 애아빠가 있다 해도 이상적인 아빠의 역할은 하고 있지 않았다.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한 손에는 담배를,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때로는 험한 말을 섞고, 메탈, 락 음악, 오토바이, 여행, 낚시, 골프 같은 취미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취향이 확고했던 남편이 아이 덕분에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했다. 물론 그 과정은 지난했다. 남편에게 수없이 잔소리를 하고, 싸워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관계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남편을 변화시킨 것은 내가 아니라, 아이였다.


우리 남편은 아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기본적인 육아 지식이 없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느냐면 7개월쯤 된 아이에게 분유를 타서 주는데, 여름이나 날씨가 더우니 시원하게 먹으라고 냉장고에 넣어놨다 줄 정도였다. 잠시 외출했다 돌아오니 찬 우유를 먹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참을 인자 셋을 머릿속에 그리며 분유 타는 적정한 온도를 가르쳐 주었다. ‘남편이 육아하는 모습이 성에 안차더라도, 기저귀를 애기 머리에 씌우더라도 그냥 둬라. 그렇게 아빠가 된다.’던 어느 육아책에서 봤던 구절을 상기하며.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빠빠”(불어로 ‘아빠’라는 뜻)를 시도때도 없이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남편은 본인이 아빠라는게 실감났다고 한다. 아이가 불어를 배워야 한다는 대의(라고 쓰고 ‘핑계’라고 읽는다)를 위해 나는 남편과 아이를 단둘이 두고 외출하는 일이 잦았다. 아무래도 내가 있으니 아이가 나에게만 달라붙어 익숙한 한국말을 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남편이 하루종일 아이를 보고 나면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런데 같이 보낸 시간만큼 정이 들었는지 아이는 아빠에게 푹 빠져 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똑 닮은 두 사람이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불어로 재잘거리며 속삭이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 남편은 해골 티셔츠를 종류별로 돌려 입으며 검정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검은색 바탕에 무늬가 좀더 알록달록하고 동물 그림 있는 티셔츠도 입는 일이 잦아졌다. 첫째는 한참 글자를 배우고 있어서 아빠 옷에 그려진 알파벳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집에서 주로 울려퍼지는 음악은 샨딸고야(Chantal Goya)가 부르는 뮤지컬풍의 동요이다.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고 자연, 동물 보호, 행복, 사랑에 관한 노래 가사가 많다. 아이들은 공주 드레스를 입고 거울을 보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춤을 춘다. 남편도 아이들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동요를 부른다.


가끔은 메탈 음악도 듣는다. 우리집 아이들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메탈 음악을 들어서 그런지 익숙하다. 그래서 온 가족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헤드뱅잉을 한다. 세살배기 아기와 8살 여자아이, 중년의 아빠가 금발로 헤드뱅잉하는 이 광경은 그야말로 정말 장관이다. 아아, 지나고 나면 사무치게 그리울 애틋한 추억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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