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걸 다줘도 아깝지 않아

by 이주리

고백하건대 이전의 나는 세상을 내 본위로만 보는 그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예전에 남자친구(지금의 남편)한테도 내가 하자는 대로 안할거면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정확히 그렇게 말한건 아니지만 뉘앙스는 그러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결혼 없이 동거 못하겠다. 결혼 안할거면 헤어지자. 내 부모가 한국에 와서 사는 조건으로 결혼을 승낙한단다. 그러니 나하고 결혼하려거든 어떻게든 네 직업을 한국에서 찾도록 해. 그렇게 배짱을 부렸다. 원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양보하는 법이다. 결국 그가 졌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크기가 더 컸으므로 그는 제 나라도, 고향도, 가족도, 친구도, 잘다니던 직장도 등지고 연고 하나 없는 한국으로 왔다. 못돼 처먹은 나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 다 큰 성인이 자기 스스로 결정한 건데 왜 내가 미안해 해야 해?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받는 사랑에 익숙했다. 장녀로 태어났기에 집안 살림이 아무리 빠듯해도 내게 주어진 것은 항상 새 것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나를 항상 첫째라고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에 동생한테 대장 노릇하며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욕심부려서 어떻게든 가졌다. 학교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었고, 직장에서도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잘한다고 우쭈쭈해 주었고, 내가 잘나서, 잘해서 그런 줄 알고 잘난 맛에 취해 지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겸손해졌다. 일단, 내 처지가 공주에서 무수리로 변했다. 엄마로서 응당 해야 할 의무는 수천, 수만가지가 되었고, 아이는 그저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하면 되었다. 어찌 보면 이렇게 불평등한 관계가 있나 싶어 억울할 만한데도 기분이 많이 나쁘지 않았다. 예쁜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나한테서 이런 아이가 나왔나 싶어 그저 좋았다. 사람들이 아이보고 이쁘다고 칭찬하면 날더러 이쁘다고 하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웃으면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어 마음이 쓰리고 아렸다. 아이가 울때는 내 가슴이,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런 것이 주는 사랑의 기쁨이구나. 내 모든걸 다줘도 아깝지 않은 보석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온다. 그러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함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진다. 나도 내 부모에게는 이런 보석이었겠지. 우리 남편도 제 부모에게는 이런 보석이었을텐데, 그토록 소중한 보석을 부모 속도 모르고 내가 홀라당 빼앗아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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