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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12. 2023

프랑스 아이들도 상처는 있다

프랑스와서 가장 놀란 것은 이혼과 재혼가정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거의 80%정도? 정확히 말하면 결혼 자체를 안했으니 법적으로는  이혼도 재혼도 아닌 경우도 많다. 물론 둘만 좋았다가 식어서 헤어지는 거면 누가 뭐라 하겠느냐마는 애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여기는 결혼 안해도 애를 쉽게 낳는다. 동거하던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나면 애들은 매번 커리어가방을 끌고 일주일은 아빠집, 일주일은 엄마집을 전전한다. 그 와중에 엄마아빠는 각자 새사람과 금방 쉽게 사랑에 빠진다. 한국처럼 심사숙고하는 일 없다. 또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생긴다. 그래서 애가  넷, 다섯 있는 집 보면 카톨릭이나 무슬림 아니고서야  여러명의 엄마, 아빠가 얼키고 설켜 있다. 애들은 스케줄따라 친엄마집 갔다가 친아빠집 갔다가 새엄마집 갔다가 하는데 옆에서 보기만 해도 피곤해 보이고 복잡하다.


겉으로 보면 자유롭게 살아서 좋아 보인다. 한국처럼 정이나 책임감으로 가정을 지킨다 이런 개념도 없다. 그냥 좋으면 같이 있고 싫으면 빠빠이하는 것 같다. 나이도 구애받지 않는다. 스무살 차이 나는 남녀도 많이 보았다. 상대가 애가 있는 것도 구애받지 않는다. 애 셋을 데리고 다니는 나에게도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꽤나 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쨌든 여기 남녀들은 사랑에 불타고 있어서인지 다들 스킨십에 적극적이다. 어디서든 손잡고 다니고, 안고, 뽀뽀하고, 무릎에 앉아있고. 전처, 전남편, 아이들이 옆에 있건없건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도 상처는 있다. 아이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엄마집이지만 새아빠집이고 새로 태어난 동생들 집이기도 하다. 아빠집이지만 아빠여자친구집이고 이복동생들 집이기도 하다. 엄마집과 아빠집을 일주일씩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아이방으로 마련해놓은 방은 호텔방처럼 덩그러니 침대와 빈 책상이 놓여 있다. 방이라도 따로 있으면 다행이지만 방이 모자라면 낯선 동생들과 같이 써야 할때도 있다. 어릴때야 멋모르고 그러려니 하지만 예민한 사춘기 때는 싫기 마련이다. 그래서 애들은 밖으로 돌며 방황을 한다. 내눈에는 그게 뻔히 보여서 짠한데 정작 여기 부모들은 신경 안쓴다. 그저 본인의 감정에 충실할 뿐.


우리 남편도 미혼모 밑에서 자라며 엄마 남자친구 여럿 바뀌며 같이 살았었고, 엄마 남자친구가 데려온 아이와 한 방을 쓴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고역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자기는 애아빠가 된 이상 절대 이혼은 안할거고  이혼을 한대도 재혼은 없고 애는 다시 안 만든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 부부는 여느 한국부부처럼 정으로, 의리로 사는 편이다. 아무래도 한국에 10년  살면서 남편이 한국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남일이면 그런갑다, 프랑스 사람들은 저렇게 쿨하게 살더라, 하고 넘길 수 있지만, 막상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산다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우리 애들이 프랑스에서 커서 여기에서 물들어 나중에 너무 쉽게 동거하고 너무 쉽게 애를 낳을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애는 분명 축복이긴 하지만 태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데... 자기 일도 아닌데 자식일까지 걱정하고,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까지 미리 당겨 걱정하는걸 보면 나는 그러고보면 영락없는 한국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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