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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31. 2023

애착인형과 쪽쪽이

지난 주말에 우리집에 프랑스 이웃집 애들이 놀러와서 하루 자고 갔다. 우리 큰딸, 작은딸 친구들이다. 여기서는 이걸 잠옷 파티라고 부른다. 여자애들 넷을 쪼르르 한국식으로 바닥에 요를 깔고 같이 이불덮어 재웠다. 토끼 네마리처럼 누워있는게 너무 귀여웠다. 한국애들처럼 어둠속에서 속닥속닥 수다 떨다가 잘 줄 알고 잘자 하고 애들만 두고 나왔다.


그런데 여섯살 먹은 프랑스애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괴물이 있어서 못잔다며 무섭다고 울고 불고. 입에는 쪽쪽이를 물고 애착인형(여기서는 두두라고 부른다)을 꼭 껴안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열살먹은 프랑스애도 애착인형을 얼굴에 꼭 껴안고 누워있다. 우리 둘째딸도 갑자기 분위기에 편승해서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먼지구뎅이 인형을 어디서 찾아와서 꼭 끌어안고 자기도 두두 있다고 한마디 거든다.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 첫째딸은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나는 막내를 안아 젖물려 재우느라 옆방에서 꼼짝을 못했다. 대신 남편이 수십번 그 방에 들락거리며 난리부르스를 추고서야 한참 후에 잠이 들었고 겨우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집 애들은 한국식으로 키윘는데 바닥에 요 깔고 엄마 품에 끼고 젖물려 재웠다. 처음에는 프랑스 남편이 기 잠자리 독립해야 한다고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 그런데 아기를 침대에만 눕히면 자지러지게 우는데다, 침대에서 몇번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생겼고, 맞벌이 할 때는 아기를 낮에도 못보는데 밤에라도 끼고 자고 싶었다. 남편이 뭐라한들 육아 주체는 엄마이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국식으로 재웠다. 지금도 열살된 큰 딸과 여섯살 작은 딸은 한 방에 요 깔고 나란히 누워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부대끼며 자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보통 친척집이나 친구집에 가서 자게 되면 애들이 "엄마 아빠 보고싶어"하면서 울고 어른들이 토닥토닥 안아서 재운다.


그런데 여기 애들은 애착인형과 쪽쪽이를 끌어안고 운다. 동거와 결혼, 이혼이 너무 잦고, 같이 사는 엄마도, 아빠도, 엄마 남친도, 아빠 여친도 자주 바뀌고, 아이들은 매주마다 이 집 저 집 떠돌면서 산다. 엄마집, 아빠집을 일주일 혹은 2주일 단위로 번갈아 지내는데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닌다. 할머니집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저기 떠돌며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결국 인형과 쪽쪽이 뿐이다. 아아, 자유 연애 속 짠한 아이들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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