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생 우리 시어머니에게는 같은 동네에 사는 오래된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40년이 넘었다. 그런데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요즘 말로 남사친. 남자사람친구다. 프랑스에서는 남자 여자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본명은 모르겠는데 삐삐라는 별명으로만 부른다. 키도 크고 덩치도 산만하고 머리도 하얀 산발이고 수염도 엄청 긴데 허옇다. 직업은 예술가라는데 매번 볼때마다 나는 좀 무섭다. 암튼 예술가답게 우리한테 시를 써서 선물해 주기도 하신다. 하지만 생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나에게 시를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삐삐에게 최근 커다란 어려움이 닥쳤다. 삐삐 부모님이 두분 다 돌아가신 것이다. 부모님이 90이 훨씬 넘었으니 평균 수명보다 더 오래 사셨고 가슴은 아프지만 돌아가실 수도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부모님 부재하고 나니 두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하나는 극심한 경제적 생활고. 상속세를 내야하고 부모님 연금이 사라져 생활비가 없어진 점이다. 그 와중에 집은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서 수리가 필요한데 집을 고칠 돈도 없다. 그렇다고 본인이 수리할줄도 모른다. 집도 커다란 맨션 같은 집이라 난방비, 전기세, 관리세도 많이 든다. 둘째는 졸지에 갑자기 고아가 되어버린 삐삐는 외로움에 어쩔줄 몰라 한다는 점.
삐삐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한번도 직장에 다닌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는 그냥 집에 있었는데 시를 짓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것만 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외동아들로 삐삐 하나만 두었고 부모님이 워낙 전문직에 집도 부유했기 때문에 아들이 하고싶은 예술을 평생 하도록 응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삐삐는 부모님과 평생 살면서 예술가로 지냈다. 프랑스니까 예술가라고 부르지, 한국에서는 부모 등골 쳐먹는 놈팽이라고 부를 것이다.
분명 삐삐 부모님은 당신이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삐삐를 위한 것임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테다. 사랑으로 평생을 최선을 다해 아들을 끼고 돌봤을 것이다. 그런데 종국에는 그 사랑이 자식을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자식이 영원히 아기로 남는것도 아닌데. 그때 좋다고 나중에 다 좋은게 아니고 그때 나쁘다고 나중에 다 나쁜게 아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우리 남편이 자기는 한번도 못받아본 아버지 사랑을 우리 세아이에게 넘치도록 퍼붓는다. 우리 시어머니는 지난날 미혼모로 아들 키우기 쉽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장성한 아들이 말벗이 되어주고 손주들과 추억거리를 선사해준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남아선호 극심하던 80년대에 온갖 우스운 꼴 당하며 범띠, 용띠 두딸 키웠는데 지금은 딸들과 든든한 사위들, 손주들이 든든하다. 지나고보니 결핍이 재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