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노인들이 부자다. 재산부자, 현금부자, 시간부자.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재산(부동산)부자:
노인 한 사람 앞에 집이 여러채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집, 조부모에게 물려받은 집, 남편과 시부모, 시조부모에게 물려받은 집, 본인이 사놓은 집과 아파트, 건물 등등 전국 방방곡곡에 부동산이 많다. 그런데 세를 주지도 않고 그냥 비워두는 경우가 정말 많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됐다. 화도 났다. 우리가 처음에 프랑스에 와서 월세집을 찾아 헤맬 때였다. 입지 좋은 곳에 집이 저렇게나 많이 있는데 왜 저렇게 빈집으로 두고 썩히는 거야? 결국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은 몇안되는 월세 매물을 갖고 취업관문을 뚫듯 엄청난 경쟁을 해야 했다. 비싼 돈을 주고 다 부서진 집에 살아야 했고 그마저도 감지덕지였다. 한국에 재개발 앞둔 집도 이것보다는 집 상태가 좋을 것이다.
2년이 다되니 이제야 알겠다. 노인들은 이미 부동산이 많고 연금으로 현금도 많이 받고 의료도 무료이다. 때문에 월세 소득이 더 필요하지 않다. 이미 기력도 노쇠했고 사람들 말도 잘 안 들린다. 그런데 세입자 들락거리며 때로는 실랑이를 해야하고 세금도 내야하고 집 관리도 해야하는 것이 귀찮은 것이다. 지금 돈이 필요하지도 않으므로 팔 필요도 없다. 부동산이라는 것은 가만히 두면 가격이 올라가니 그냥 두었다가 자식에게 물려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우리 다섯식구는 180년된 방 세칸짜리집에 살지만 우리 이웃 할매들은 우리집 서너배는 되는 호화로운 건물(집 수준이 아니다)에 혼자서 산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할배들은 일찍 돌아가시고 할매들은 장수를 하신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자본주의가 한두세대 앞서 있다. 38세 우리 남편을 기준으로 하면, 남편 조부모 세대에 이미 본격적인 맞벌이가 시작됐고, 아이는 하나둘만 낳았다. 남편 부모 세대에는 모두가 맞벌이였으며 이때도 아이는 하나둘만 낳았다. 아이들은 당연히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조부모, 부모들이 기본 30년, 40년 넘게 일을 하니 재산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가 오래 지속되면 노인들은 더더욱 부자가 되고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가난해진다는 걸 알았다.
현금부자:
프랑스 사람들은 저축에 목매지 않는다. 대학은 거의 안가고 대학을 간다해도 학비가 거의 무료이고 병원도 거의 무료이므로 만일에 목돈이 들 때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식한테도 돈을 안들이고 자식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학원이 없기도 하고 자녀 교육에 신경 자체를 안쓴다. 결혼할때도 돈 일절 주지 않는다. 전세금은 고사하고 월세금도 안준다.
우리 시어머니도 우리 결혼할 때 초콜렛과 타올 슬리퍼 선물을 주셨다. 나는 그때 어려서 철도 없고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몰랐는데, 우리 친정엄마가 기가 막혀 하셨었다. 우리 친정부모님은 우리 결혼식에만 몇천만원을 쓰셔야 했다. 그러고보면 프랑스에서는 부모 노릇하기 참 쉽다. 그런데 막상 자녀 입장에서 결혼하는데 아무런 지원을 못받고 생으로 월세부터 시작해서 애 키우기 고달프다.
노인들은 연금이 풍족하다. 연금으로 매달 현금이 채워진다. 그래서 식당에서 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노인이다. 카페에 앉아있거나 옷가게에서 옷 사고 하는 사람들도 노인이 많다. 이건 젊은 사람들은 죄다 온라인으로 쇼핑해서 더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시간부자:
시간이 차고 넘친다. 지난 2년동안 은퇴하고 소일거리래도 일하는 노인을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62세에 은퇴하면 집에서 가만히 논다. 여기는 일하는 것 자체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한국과는 정반대다. 한국은 노인들도 할수 있으면 어떻게든 일하려고 애를 쓴다.
시간이 많으니 여행을 많이 다닌다. 주로 본인들이 갖고있는 전국 방방곡곡 부동산에 보름씩 한달씩 지내다가 온다. 무료함을 이집저집 다니면서 보낸다.
그래도 한가지 좋은 점은 노인들이 손주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점이다. 방학때 할머니들이 손주를 봐주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 할머니들처럼 정성껏 보지는 않는다. 초콜렛과 아이스크림을 엄청 물려주고 티비 실컷 보고 식사도 봉지 뜯어서 통조림 뜯어서 먹는다. 한국의 할아버지들이 손주 보는 방식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