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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Sep 09. 2024

노인 커플로만 가득 찬 프랑스 식당

며칠 전에 아이 생일이라 정말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갔다. 프랑스에서는 워낙 외식이 비싸니 평소에는 외식은 생각도 못한다. 죽으나사나 집밥이고, 집밥이 지치고 힘들면 지겨우면 가끔 밖에서 간단히 샌드위치 정도나 피자를 와서 때우는 정도이다. 특히 우리 집처럼 애가 셋이나 되는 대가족은 외식하러 갔다하면 적어도 30만원~40만원은 깨지니 평소에 외식은 꿈도 못꾼다. 이번에는 아이 생일이라 큰 마음 먹고 갔다. 사실 이 것도 우리 시어머니가 찬조해주신다고 해서 겨우 간 거다. 프랑스에 와서 참 가난하게 산다.


우리가 간 식당은 ‘뷔팔로그릴’이라고 해서 미국식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VIPS같은 식당이다.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야채구이 정도가 나온다. 메뉴 주문을 하려 하는데 주문받는 직원이 참고하라며 덧붙였다. “디저트 중에 솜사탕은 주문 안되고요. 음료 중에 생맥주도 안됩니다. 솜사탕 기계하고 생맥주 기계가 고장이 났어요.” 프랑스에서는 항상 뭐가 제대로 작동하는 법이 없다. 무엇이 고장나도 하나는 고장이 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고장없이 착착 제대로 일이 진행되면 “일이 제대로 되는게 영 이상한데?”하고 오히려 불안하다.  


그런데 주문받는 종업원의 프랑스 어투가 억양이 영 어색하고 조금 엉성했다. 그래도 웃는 얼굴로 주문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프랑스 식당에서 이렇게 웃고 밝은 얼굴로 주문받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통 프랑스 종업원들은 찡그리고 짜증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손님이 와서 자기를 엄청 귀찮게 한다는 듯이 화가 잔뜩 나 있다. 그래서 손님들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사정사정해야 주문을 받아준다. 이런 프랑스에서 이렇게 친절한 서비스는 영 어색하다.


주문을 하고나니, 남편이 귓속말로 “방금 주문받은 종업원 말이야. 우크라이나 사람, 아니면 러시아 사람일 거야. 억양이 딱 그 쪽이야.”하고 전해주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일어나면서 프랑스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젊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가까운 프랑스로 몰려왔다. 전쟁을 피해서 왔다. 프랑스는 난민에 관대하고, 여러모로 지원도 많이 해주고, 한국에 비하면 불법체류자의 인권을 과할 정도로 보호해준다. 특히 우크라이나, 러시아 사람들은 백인이라 생김새도 프랑스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인종차별을 당할 일도 없다. 


프랑스는 노인이 정말 많고, 얼마 안되는 젊은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한다. 실업급여제도가 워낙 잘 되어있어서 젊은 사람들은 굳이 최저임금을 받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실업급여를 받고 쉬는 편을 선호한다. 여기는 노인들은 퇴직하는 그 날만 평생 기다리며, 퇴직날 이후로 절대 다시는 일을 하지 않고, 연금으로 놀면서 지낸다. 연금이 나름 풍족하니 가능할테다. 그래서 프랑스는 곳곳에 구인난이다. 그 자리를 우크라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채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전쟁이 누군가에게는 불행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로또맞은 행운이 되기도 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젊고 건강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인재들이 프랑스에 자진해서 와서 프랑스어도 열심히 배우고, 직업훈련을 받아 일을 열심히 해주고, 자식들도 프랑스 교육을 받아 프랑스에 이바지 해주니 말이다. 실제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도 많이 이민을 왔고, 아이들 학교에도 많이 들어왔다. 우리 아이들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아이들과 어울려서 같이 논다. 집에서 생일잔치를 했는데 그때도 우리 집에 초대받아 하루종일 놀다 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프랑스는 모든 것이 느리다. 속이 터져서 터져서 이제 더 문드러질 속도 없다. 내 접시에 담긴 음식은 커다란 고기덩어리와 감자 한덩이, 마요네즈가 다였다. 차갑고 말라버린 바게뜨빵가 담긴 바구니도 한쪽에 있다. 음식에는 거의 간이 안 되어있다. 여기는 모든 것이 셀프다. 소금, 후추도 직접 쳐 가면서 먹고, 음식 덩어리도 본인이 알아서 직접 칼을 들고 썰어 먹어야 한다. 고기를 한 입 먹어보니, 별 특별한 맛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재료 본연의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양 음식은 사실 한국 음식에 비하면 이거를 요리라고 부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성의가 없다. 한국 음식은 원재료를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칼로 썰어야 한다. 써는 모양도 얼마나 다양한가. 다지고, 채를 치고, 종종 썰고, 나박하게 썰고, 때로는 네모낳게, 때로는 동그랗게… 재료 특성과 조리 방법에 맞춰 썰어야 한다. 그리고나면 조리고, 볶고, 찌고, 아니면 갖은 양념에 무치고, 발효를 시키고… 온갖 난리법석을 쳐서 한 끼를 차린다.

그래도 이왕 식당에 왔으니 분위기에 취해서 먹는다. 거진 반년만에 하는 외식다운 외식이다. 오랜만에 외식이니 프랑스답게 와인잔에 와인을 채워서 마신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국물을 떠먹는 문화가 없다. 그래서 질긴 고기 한 입을 직접 칼로 썰어서 입에 넣은 후에 와인 한 모금으로 축여가며 먹는다. 프랑스 소고기는 지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씹어먹을 때는 한참 걸린다. 내가 아직 젊으니 스테이크를 아작아작 씹어 먹지만, 나이 들면 이 스테이크 먹기도 쉽지 않겠다 싶다.


옆에 있는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열살먹은 큰 아이는 어른처럼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스테이크 옆에 감자튀김이 수북히 쌓여있다. 일곱살 둘째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수북히 담긴 치킨너겟과 감자튀김을 케찹에 찍어가며 손으로 집어먹고 있다. 세살짜리 막내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긴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케찹과 마요네즈 번갈아 찍어먹고 있다. 목이 막히는지 다들 음료수를 연신 마셔가며 음식을 넘긴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식당에 어린이 메뉴가 따로 있고, 당연히 따로 시켜야 한다. 한국처럼 어른 음식 같이 나눠서 한 입 주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보통 메뉴는 한가지다. 치킨너겟과 감자튀김, 음료수. 치킨너겟은 냉동인데, 닭고기 갈아서 뭉쳐서 빵가루 입혀 튀긴 것이다. 한국 치킨에 비하면 맹숭맹숭한 맛이다. 맥도날드에서 먹는 치킨너겟보다도 맛이 없다.


이렇게 성의없는 요리를 프랑스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먹는다. 그래도 분위기에 취해 먹는다. 프랑스는 음식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식당 장식에는 엄청난 힘을 쏟는다. 식당 곳곳에는 조각품, 예술품, 마네킹 같은 것들을 세워 놓았다. 벽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이 각종 사진 액자와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가끔은 너무 많은 장식품에 압도당할 때도 있다. 프랑스는 지진이 안 나는 나라라 이렇게 장식을 할 수 있지, 일본처럼 자주 지진이 나는 나라라면 이 벽에 붙은 액자 때문에 사람들이 정말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나게 먹고 금세 심심해진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 외부에 있는 놀이터로 나갔다. 나름 패밀리 레스토랑이다보니 아이들 놀 수 있게 대형 미끄럼틀을 설치해 놓았다. 우리 애들은 제 세상이라도 만났다는듯이 히히덕거리며 미끄럼틀에서 논다고 정신이 없다.


나는 미끄럼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물끄러미 식당 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모든 테이블이 꽉 찼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죄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커플들만 쌍쌍이 앉아 있었기 떄문이다! 패션도 하나같이 비슷했다. 남자 노인은 셔츠를 입고, 여자 노인은 화려한 무늬에 몸에 붙고 각선미를 강조하는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얼굴은 분명 노인인데 패션은 분명 20대 젊은 여자들이나 할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노인들이 아무리 20대처럼 생기발랄한 복장을 했을지언정, 표정과 자세는 노인임을 숨길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꾸부정한 자세로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상 다 산 것처럼 재미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별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다들 서로 딱히 할 말이 없는지 각자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음식이 나오면 음식을 조용히 먹기만 했다. 젊은 커플들처럼 눈에 꿀 떨어지는 얼굴로 서로 눈을 바라보며 수줍어하고, 웃으며 깔깔대는 그런 활기가 없었다. 음식을 먹고나면 조용히 계산하고 떠났다.


남편이 디저트가 나왔다고 들어오라고 불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우와! 디저트!”를 외치며 한바탕 신이 났다. 우리 테이블로 가는 길에 나는 다시한번 식당을 쭉 훑어 보았다. 다시 봐도 괴상한 풍경이다. 우리하고 옆 테이블만 아이가 있는 가족이다. 나머지는 모두 데이트하는 노인 커플뿐이다. 이렇게 큰 식당에 95%는 노인 커플 손님이고, 5%만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 손님이다. 


한국에서 자란 어릴적 내 기억 속에는 외식하러 가면 어딜가든 대부분 가족 손님 위주였다. 특별한 날, 온가족이 외식하러 나가면 식당에는 대부분 부모와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시끄러웠지만 활기로 가득 찼다. 물론, 모든 손님이 가족 단위는 아니었다. 데이트하는 커플이나 회식하는 아저씨들, 아줌마 모임도 있었지만, 이렇게 프랑스처럼 오로지 머리가 허옇게 센 60대, 70대 커플로만 식당이 가득 차지는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노인 커플로만 가득 찼던 식당 풍경이 너무나 으시시하다고 남편한테 조잘거렸지만, 남편한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 남편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남편에게는 어릴 때부터 항상 이런 풍경이었다고 했다. 하긴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에 접어든 나라다. 워낙 일찍부터 고령화가 시작되었고, 복지가 워낙 잘 되어 있어 노인들이 가장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지낸다. 식당이든, 호텔이든 모든 곳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노인들이 소비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모든 소비 트렌드는 노인 위주로 맞춰져 있다. 변화와 혁신 보다는 역사와 전통. 지금 프랑스 노인들에게 익숙한, 그들이 전성기였던 1970, 80년대에 유행했던 그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 노인들로 가득 찬 프랑스가 한국에게 곧 닥칠 미래다. 이제야 남편이 2010년에 한국에 처음 와서 놀라워하고, 왜 그토록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있고 싶어했는지 이해가 갔다. 2010년 한국은 어딜가나 젊은 사람으로 넘쳤고, 그 덕에 밤낮이고 어딜가다 활기가 넘쳤다. 2024년 한국은 벌써 많이 변했다. 앞으로 한국도 점점 프랑스처럼 저물어가는 노인들의 나라로 변해갈 것이다. 프랑스에 와서 미리 본 한국의 미래는 결코 즐겁지 않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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