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실현하려면

by 무리수

2025년 7월 28일


전시를 실현하려면.


그림을 늘 그리지는 않지만 언제나 작업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고 이는 곧 죄책감으로 귀결된다. 지금처럼 정해진 기간 안에 전시를 해야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하지만 잡혀있는 전시도 없이 막연하게 작업을 해야한다면 그것대로 더 힘든 일이기도 하다. 전시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창작의욕이다.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머릿속에 있다면 창작의욕은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다. 형체도 실체도 없이 두둥실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떠다닌다면 그것을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뜯어보고 해체하며 구체적이고 또렷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머릿속을 떠다니던 무수히 많은 것들을 그대로 소멸시켜 버리고 말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머릿속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머릿속 그것을 어느정도 구체화시켰다면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실현시킬 용기다. 사실 나는 매우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늘 지니고 있다. 표현하는 직업인 미술작가로서 다소 아이러니일 수 있겠으나 나는 내 그림에도 늘 선을 넘지 않는 절제를 발휘한다. 인물의 동세나 구도, 색 심지어 주제도 절제하며 표현한다. 이러한 나의 태도를 중화(?)나 절제 등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아직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작업이나 전시를 실현함에 있어서도 절제하고 망설이다 결국 하지 않는 일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써보지 않은 색을 써보거나 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붓질을 해보거나 작품을 설치할 때 재미난 요소를 시도해보거나. 여러 면의 망설이는 단계에서 소멸해 버리는 반복에 스스로가 질려버렸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세번째로 필요한 것은 실재적인 것들이다. 전시 공간과 재화, 작품 그리고 전시를 실현시켜줄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재화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으나 그에 앞서 친절한 접근과 신의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미술계 인사를 몇 알지 못하는 미술계 사람이지만 친절과 예의, 개성(아우라), 무례, 불안감, 적극성 등이 뒤섞여 그 관계가 이어진다고 느꼈다. 나는 늘 나름대로의 친절과 예의로 상대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을 어필하기는 어려운 세계라고도 느꼈다. 누구보다 개인적이면서도 협력을 요하며 이루는 전시들은 그 과정을 감추고 결과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감추어둔 과정들이 미술계를 떠다닌다.


물론 이 세 가지만이 전시 실현을 위한 전부는 아니겠으나 현재의 내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이며, 이 셋은 어느 하나가 우선하지 않고 서로를 다독이며 도파민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나는 엄격한 TJ형 인간으로서(?) 일상의 루틴을 잘 다스리며 적정 도파민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사실 지금은 몇 개월 간의 무력함을 끝내고 약간의 성취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첫 번째 항목에 해당하는 창작의욕이 돋아나는 지점에 서 있다.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야만 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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