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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리 Mar 12. 2021

국회에 입성하다_박영선 의원이 보고 싶었던 것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의원이 내게 말했다. “주리, 꼭 내가 쓴 것처럼 잘 썼네.” 나는 그날 잠을 자지 못했다. 보고를 하러 들어가면 내가 쓴 글은 보이지도 않게 그 위로 엄청난 첨삭을 받고 나오기 바빴는데, 글을 잘썼다고 칭찬을 듣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드디어 감을 잡았다! 


“의원 위에 유권자 있다”


그 감의 키는 바로 “유권자”였다. 사실 의원은 내가 처음 글을 썼던 순간부터 “시민”, “유권자”를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늘 글을 써서 들어가면 “이걸 보는 사람이 주리가 쓴 내용이 궁금할까? 아닐 것 같은데” 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 말고,  지역 주민들이 보고 싶은 걸 써야지, 주리가 지역 주민이면 뭘 보고 싶을지 생각해보고 다시 한번 써봐요” 라고 조언하곤 했다. 이 말장난 같은 말이 그 당시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피드백을 듣고 나와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알리고 싶지만, 지역 주민은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내용이 그 글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앵커출신이었기에 가능한 피드백이었던 것 같다. 앵커는 늘 시청자가 보고 싶어하는 것을 가장 빠르게, 또 가장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람이었다. 앵커가 만약 시청자가 궁금할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이 사건을 취재한 과정을 쭉 설명하고 있다면, 반응이 어떨까? 거기에 답이 있었다. 


국회의원이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얼마나 어렵게 일을 했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이 지역 주민의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내 글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의원의 이름으로 나가는 글의 독자는 ‘유권자’이다. 때로는 ‘국민’이 될 수도 있다. 내게 1차적 독자는 의원이었기에 그가 보기 좋게 쓰려고 하는 마음이 컸다. 내가 한 일을 상사인 의원이 알아주길 바랬고, 그저 그에게 잘 보이길 기대했다. 하지만, 의원에게 중요한 독자는 유권자였기 때문에 의원은 유권자가 보기 좋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고로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의원이 잘 보이길 바라는 그 사람에게 의원이 어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을 쓰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두괄식에 맞추어 보고하는 것 뿐이었다. 그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던 짝사랑이 정체를 드러내던 순간이었다. 



글쓰기 TIP.

내 상사를 만족시키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 바로 그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 내 상사 뒤에 서 있는 최종 독자는 누구인가?

- 내 상사가 설득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내 상사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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