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리 Mar 12. 2021

국회에 입성하다_박영선 의원과의 인연 1

“앵커출신의 여성국회의원, BBK 여전사”


그렇다. 내가 무려 이런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국회의원의 비서가 되었다. 1차 서류를 통과하고도 무려 3번의 면접을 거쳐서 그 흔한 누구 빽도 쓰지 않고, 오롯이 내 실력으로 붙었다. 홍보와 수행을 할 수 있는 비서, 그것이 나를 뽑은 채용 공고의 핵심이었다. 이 한 줄이 얼마나 많은 업무를 담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면 정말 깜짝 놀란다. 그 시절을 살면서 나도 매순간 깜짝 놀랐으니까. 


먼저 홍보와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느날은 이걸 하고, 어느날은 저걸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기본적으로 매일, 그 두개의 업무를 병행한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면 수행이란 의원의 일정을 함께 다니면서 의원 앞으로 들어오는 민원 접수부터 행보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때에 따라서는 영상으로도 촬영을 한다. 그 사이에 들어오는 일정을 받아 적어 사무실에 있는 일정 비서에게 보내고, 이후 일정을 체크 수행기사님께 전화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종일 일정을 따라다니면서 보좌를 하다가 의원이 공식적 일정이 끝난 뒤 사무실에 복귀하면 이제 홍보의 업무가 시작된다.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고 보도자료, 홍보글 등을  작성한 후 의원에게 컨펌 받고 발행하고 배포한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업무가 이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문회나 국정감사, 정기국회, 상임위 등이 열릴 때 나는 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질의서와 보고서 작성의 늪에 빠져야 했다. 정말 다 셀수도 없이 많은 글이 내게로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는 태어나서 그 때까지 HTML이라는 언어를 이용해 홈페이지가 만들어진다는 사실 조차도 몰랐던 인물이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보도자료나 홍보자료 작성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다. 보고서 작성법은 말도 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당시에 나는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글을 쓰라고 이토록 ‘당연하게’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의구심을 가졌었다. 너무도 답답한 나날이었다. 


“야단맞지 않으려고 글을 썼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월급을 받아야 했고, 그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우리 의원실은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일 잘하고, 똑똑하고, 쿨한 상사 밑에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 이거 못쓰는데 왜 쓰라고 하느냐, 어떻게 쓰느냐, 물을 틈도 없었다. 일은 시간대별로 몰아쳐 들어왔고, 나는 어떻게든 그 일을 쳐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선배 비서관, 보좌관으로부터 많은 꾸중을 들었어야 했고, 의원으로부터 끝도 없이 글쓰기 강의와 첨삭을 받아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좀 덜 혼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글을 배워다가 이렇게 잘 쓰게 된건지, 돈주고 배울 수 있으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상사는 너무 똑똑했고, 내가 세네시간이 걸려 쓴 글을 금새 읽고는 3초만에 핵심메시지를 찾아냈다. 그 핵심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날에는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뭐? 내가 뭘 하면 되는지 말을 해야 알지”


그는 성격이 급했고, 급한만큼 일을 잘했다. 지금까지도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중소기업장관을 지내고, 지금은 서울시장 후보가 된 ‘박영선 의원’을 말한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있는 여성, 가장 스마트하게 일을 잘 하는 여성. 아니 성을 떠나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는 늘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잘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루뭉술한 면이 없고, 정확하고 지시하고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명확하게 했다. 그런만큼 보좌진들에게서도 그런 명확성을 요구했던 것 같다. 


보고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려고 하면 어김없이 “그래서 뭐?”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이 당시에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 말에 대답하기 위해 들어가기 전 문서를 몇번이고 다시 살펴봤다. 그 질문이 나오기 전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먼저 하기 위해서. 그에게 글이란 ‘결론’을 내는데 필요한 요건을 제시해주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어디로 갈지 결론을 내야 하는지 네다섯갈래 길 앞에서 갈팡질팡 설명을 이어가면 얼마나 답답할까. 결국 참지 못하고 ‘그래서 뭐?’라는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모든 글이 문제 해결과 결정의 단서가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긴 질의서 속에서도 뭘 질문할 것인지, 이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쓰는 사람이 정해놓지 않으면 어김없이 의원은 야단을 쳤다. 그에게서 떨어지는 불호령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그야말로 완벽하게 ‘두괄식’ 보고서 작성과 보고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가 묻기 전에 그가 알아야 할 내용과 인지해야 할 사실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그래서 늘 말이든 글이든 의원에게 들어갈 때는 ‘뭘 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으로 진행되었다. 결론이 먼저 나오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전형적인 두괄식 상사였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날마다 진화하는 글의 종류, 우리는 숨가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