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8090 : Episode Ⅱ
내 군대 이력은,
계속해서 버림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기구하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육군으로 입대했는데
신병교육훈련이 끝나자 전경으로 차출된다.
충주에 있는 중앙경찰학교로 보내져
시위진압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해양경찰로 차출된다.
결국, 부평의 경찰종합학교에서
해양경찰 교육을 받고 나서야
동해 어촌의 한 선박출입항신고소로 배치된다.
입대할 때만 해도
3개월 후에 동해바다에서 군생활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얘기는
신병훈련소부터 경찰학교까지 함께 생활했던 동기 녀석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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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시작되던 1995년 3월 초.
겨울이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도심과는 달리
첩첩산중에 자리 잡은 신병교육대는 시베리아 그 자체였다.
이른 불침번을 마치고 얼어버린 얼굴을 비비면서
침상의 모포로 들어가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차가운 따스함의 행복감을 느끼며
선잠에 들 때 즈음
옆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보다 앞서 불침번을 섰던 동기 녀석이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지?' 싶었다가,
피곤함과 졸음이 앞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쥐 죽은 듯 고요한 내무반 바로 옆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되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운 좋게 7시간을 내리 잘 수 있는 순번으로 불침번을 섰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옆자리 동기가 울고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었다.
"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 말을 들었는지 잠시 주춤하다가 계속해서 훌쩍인다.
"야~ 무슨 일인데 그래?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면 여자친구가 헤어지기라도 하재?"
답답해서 가능한 모든 상황을 들어가며 다시 물었다.
녀석이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대답한다.
"콜라가 너무 먹고 싶어..."
"뭐? 콜라?"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다.
"어..."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녀석은
콜라를 옆에 달고 살 정도로 탄산중독인데
여기 와서 한 달이 다되도록 못 먹고 있으니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역시 군대란 다양한 인간군을 만날 수 있는 곳이구나...
알콜중독, 니코틴중독은 들어봤어도 탄산중독은 처음이었다.
콜라가 먹고 싶어서 우는 인간도 처음이었다.
그깟 콜라 때문에 피 같은 내 취침시간을 뺏겼다는 사실에
허탈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다 큰 녀석이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라는 생각에
"첫 휴가 때 실컷 마실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를 해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6주간의 신병교육훈련이 끝났고
난 전경으로 차출되어 중앙경찰학교로 가게 되었고
군번에 따라 옆자리의 콜라울보도 나와 함께 차출되었다.
수송버스를 타고 경찰학교로 들어서니
이전 신병훈련소와는 시설이 확연히 달랐다.
산속에 요새처럼 자리 잡은 경찰학교는
잘 정비된 트랙이 깔려있는 커다란 운동장이 있었고
생활관 시설과 식사, 보금품의 퀄리티는
신병훈련소에 비하면 거의 5성급 호텔이었다.
훈련소 생활로 꾀죄죄한 촌놈 같았던 우리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인솔 교관을 따라 생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찰학교의 시설에 감탄하며
생활관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우리는 1층 입구에 떡 하니 놓인 자판기를 보게 되었다.
자판기에는 동기 녀석이 그렇게 먹고 싶었던 콜라는 물론이고
각종 탄산음료가 청량함을 뽐내며 진열되어 있었다.
더위와 이동으로 지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맛을 다시며
하염없이 자판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교관이 한마디 한다.
"자판기는 입소 2주 차부터 사용할 수 있다.
너희들의 훈련 태도를 보고 앞당겨줄 수도 있으니 훈련에 최선을 다하도록!!!"
실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난 문득,
내 앞 열에 서 있던 동기 녀석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녀석은 자판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학교 훈련 이틀차 저녁이다.
처음 받는 시위 진압 훈련에 지쳐
모두 점호를 마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나도 이제 막 눈을 감은 듯한데
불침번 앞순번인 동기가 내 순서라며 몸을 흔들어 깨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생각하며
비몽사몽 눈을 감은 채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화를 주섬주섬 챙겨 신는 그 순간,
밖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새벽시간의 그 소리는
생활관의 복도바닥 전체를 타고 크게 울렸다.
그리고 몇 초 후, 또 한 번 '덜컹' 소리가 들렸다.
잠귀 밝은 몇몇 동기들이 뒤척이며 잠에서 깬다.
그런데 곧바로,
"야! 너 이 새끼 뭐 하는 거야!!!"라는 교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는 불현듯 스치는 내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불침번을 서기 위한 장소인 생활관 입구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예감은 적중했다.
동기녀석이 1주일을 참지 못하고
모두 잠든 새벽시간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 것이다.
내가 갔을 때 그 녀석은 이미
콜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고
교관은 이 모습을 보고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더 가관인건
교관이 "이 새끼가~ 그거 안 내려놔!!!"라고 소리치는 와중에도
두 번째 콜라까지 따고 있었다.
약이 오른 교관이 캔을 뺏으려 하자
그 녀석은 커다란 덩치를 틀어
등으로 교관을 막으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 버렸다.
이후의 상황은 모두가 예상하는 그대로다.
교관은 이 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을 대로 잃었고,
덕분에 얌전히 자고 있던 우리 모두는
그 새벽에 일어나
넓디넓은 경찰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뛰었다.
우리는 운동장을 돌면서
한마음 한 뜻으로
한 사람을 향한 셀 수 없는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교육을 마칠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자판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 콜라를 마시며 우는듯 웃던 녀석의 모습이...
승욱아~
너 그때 우리한테 평생 먹을 욕 다 먹었을 텐데
그만큼 잘 살고 있는 거지?
혹시, 이 글 보면 연락 줘.
사과로 콜라... 아니 소주나 한잔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