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차왕 엄복동

잘살아보세 : Episode Ⅰ

by 삼장법사

자전거 국토종주 2일 차~


전 날의 100키로가 넘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이른 아침

동틀 무렵에만 수 있는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참을 달리다

읍내 슈퍼가 보여

테이블에서 잠시 쉬며

정비를 한다.



예정된 일정 안에

국토종주를 마무리하려면

매일 150키로 이상은 달려야 하기 때문에

장비 점검은 필수이다.


이번 종주를 위해

자전거부터 함께 싣을 짐까지

나에게 최적화된 세팅을 마쳤다.


어떤 돌발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종주길이지만

준비를 단단히 마치니 마음이 든든하다.


잠시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몸이 서서히 적응하면서

전날의 라이딩으로 인한

뻐근함과 안장통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 속도를 내본다.

시야를 따라 흐르는 풍광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이곳이 바로 천국인가 싶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 내 옆을 획~하고 지나간다.


'속도를 즐기는 라이더구나'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앞을 보니

웬 동네아저씨가

기어 변속기도 없는 허름한 자전거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늘어진 티셔츠에 양복바지,

맨발에 삼선슬리퍼,

거기에 좌우로 쩍 벌린 다리까지...


마치 쌀 배달용 자전차에 올라탄

시골 어르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리 노력해도

아저씨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약이 올라

기어를 고단으로 바꿔

아무리 페달질을 해도

앞과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


풀셋으로 장착한 라이딩 복장에

앞에 있는 자전차에 비하면 페라리 급인 내 자전거가

무용지물이다.


죽을 듯이 따라가다가,

그가 양손을 놓고

앞뒤로 박수를 치고 어깨를 돌리면서도

나와의 거리를 더 벌리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깨달았다.


'난 이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망연자실해진 난

함께 한 일행과 자전거를 세우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빠"라고 외치면서

앞에 있는 엄복동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저녁까지

말없이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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