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블루스 : Episode Ⅰ
욕먹을 각오로 시작부터 내 자랑을 하자면,
나는 우리 로펌에서 소위 에이스 직원이었다.
그중에서도 현장에 나가 물건에 딱지를 붙이는
유체동산 강제집행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변호사님들도 실무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상의하고 조언을 구할 정도였다.
평범한 인상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내가,
강제집행 중에서도 가장 험하고 어렵다는 유체동산 강제집행을 어떻게 잘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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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근무했던 변호사실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혼사건을 가장 많이 맡은 사무실 중 하나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혼소송의 8할 이상이 아내 쪽에서 제기됐는데,
남편의 폭행이나 외도를 견디다 못해
결국 법원까지 오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판결이 나도
위자료나 재산분할,
심지어 아이들 양육비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폭행과 외도를 일삼는 류의 남편이라면
판결이 나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것임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별 수 있나~
강제집행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내가 처음 경험한 강제집행 대상은,
폭력 남편이 운영하는 공장이었다.
남편은 공장이 잘 돌아감에도
재산분할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양육비조차 주지 않아
남아있는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또한, 이혼 소송 전에 이미 대부분의 재산을 처분했거나
다른 곳으로 명의를 돌려놓은 상태였다.
'아니~ 이런 나쁜 **가 있나~'
정의감에 불타,
공장이 위치한 안산의 관할법원인
안산지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변호사실에서 근무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처음으로 강제집행 현장에 나가게 되니 너무나 떨렸다.
심지어 사무실이 바쁜 관계로 변호사님 없이 나 혼자만 현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다행히 집행현장에는 법원의 집행관 1명과 집행과 직원 2명이 동행하기에 그나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한 시간에 공장 앞에서 집행관을 만나 공장으로 들어가니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상대방에게는 이미 강제집행 고지를 했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계십니까?"라는 집행관의 기척과 함께 공장으로 들어가니,
처음엔 인기척조차 없다가
갑자기 뒤쪽에 있는 공장 출입구 철문이 '철컹'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저벅저벅 안전화 소리와 함께 공장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우리를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도, 사장인 폭력남편에게
'법원에서 공장 기계들을 압류하면 공장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뭐야"라는 외침과 함께 홍해가 열리 듯 인부들이 갈리면서
작고 단단한 체구의 누군가 나타났다.
공장장이었다.
공장장은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누가 여기 멋대로 들어오라고 했어. 어???"라고 우리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무수히 겪었을 집행관이
공장장의 말을 무시하고 판결내용과 집행절차를 설명한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듯한 노련한 짬빠가 보였다.
나는 집행관을 보면서, '아~ 오늘 집행이 잘 마무리되겠네. 다행이다.'라고 안도를 했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다.
집행관의 얘기를 듣고 있던 공장장이 갑자기 공장 구석으로 간다.
그러더니 쇠로 된 커다란 빠루를 끌고 온다.
빠루가 공장 바닥을 긁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우리 앞에 멈출 때쯤 공장장이 우리에게 소리친다.
"이 새끼들, 뭐 니들은 이걸로 맞으면 대가리 빵꾸 안 날 것 같아?
집행하려면 해 봐. 내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게!!!"
독종 중의 독종, 강적 중의 초강적이었다.
이런 것도 면접으로 뽑나 보다.
그 밥에 그 나물, 폭력남편 사장 밑에 폭력공장장이다.
그러자, 집행관은 물론이고 동행한 2명의 집행과 직원들까지
공장장의 서슬 퍼런 기세에 사색이 되어 얼어붙는다.
그들도 이러한 상대는 처음 만나본 듯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공장장의 막가파식 행동에 집행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집행관과 집행과 직원들을 쳐다보았더니 모두 난감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오늘 집행은 힘들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집행을 망설이는 집행관과 직원들이 잠시 원망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이들 모두 집에서는 한 가정의 가장 아닌가!
무리하게 집행하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원망을 누구에게 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내가 처음 잡은 이 직장이 얼마나 어렵게 잡은 직장인데 (궁금하시다면 나의 글 '청춘애찬'을 읽어주시길)
오늘 집행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난 책임질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난 집행관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집행관님~ 압류 딱지 저한테 주세요."
집행관이 얼결에 들고 있는 딱지를 건넨다.
나는 속으로는 '빠루가 진짜 내 머리로 날아올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공장을 돌아다니며 기계에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내 모습이 너무 태연해 보였는지
길길이 뛰던 공장장도 "어~ 어~ 저 새끼가~" 이러고 더는 어쩌지 못한다.
상. 황. 반. 전.
내 모습을 보고 집행관과 집행과 직원들이 용기를 낸다.
직원 한 명은 나와 함께 딱지를 붙이면서 압류목록을 작성하고,
다른 직원 한 명은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건다.
그 순간, 집행관이 공장장에게 쐐기를 박는다.
"여기에서 한 번만 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
공무집행방해죄로 바로 현행범 체포 요청합니다."
결국, 이들이 물러나고 집행은 잘 마무리되었고
우린 재빠르게 현장을 철수했다.
"휴~ 끝났다..."
밖으로 나와 집행한 압류 목록 정리를 마치고 나니 집행관님이 '점심이나 하자'라고 한다.
4명이 주변 함바집에서 식판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집행관님은 점심도 사주시고 바로 앞의 자판기 커피도 뽑아 주시면서
나에게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는지', '집행 현장에는 많이 나와봤는지' 등을 묻는다.
내 답변을 듣고는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해주고 헤어진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행관들이 집행을 신청한 측과 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나도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어쨌건, 그날의 일이 집행관사무실에 알려졌나 보다.
안산법원으로 집행 신청만 나가면 다른 집행과 직원들도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집행에 초보중의 쌩초보였던 나는,
그 경험으로 더욱더 어려운 집행현장을 다니게 되고
이후 거의 전국의 모든 집행현장을 누빈다.
그리고, 강제집행계의 에르메스 직원이 된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는 어쩌다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는지 모르겠다.
당시의 내 절박한 사정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그나저나,
이혼할 땐 하더라도
아이들 양육비는 좀 줍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