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옮긴 로펌은 7명의 변호사님 모두가
‘경기고, 서울대 법대,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초엘리트 로펌이었다.
커다란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수 천만 원대의 커피메이커가 구비되어 있었고,
큰 사건들을 많이 맡았기에 기자실까지도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급여는 이전보다 2배 이상 인상되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꿈만 같았다.
'열심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의 신뢰는 회복되었고,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내가
주는 것의 기쁨이 더 큰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결혼당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던 형과 동생에 대한 미안함으로 조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난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니 결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카들이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행복한 사회인으로서의 일상을 누리던 어느 날,
하늘에서는 나에게 마지막 시험을 내린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내 이름 앞으로 법원에서 소장이 하나 송달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예전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보험회사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보험금을 나에게 청구하는 구상금 소송이었다.
소가를 보니 1억 5천만 원이었다.
구상금 소송은 보험회사가 대부분 승소하기에 앞길이 막막했다.
판결이 난다면 나의 월급을 압류할 것이 분명했다.
이 좋은 조건의 직장을 더 이상 다닐 수 없다니...
막막했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다.
'최대한 소송을 끌면서 현재의 사무실을 다니고, 그동안 남아있는 개인적인 채무를 모두 변제하자.'
결국, 6개월 정도에 끝날 구상금 소송을 1년 6개월 동안 끌면서 개인적인 채무를 모두 변제했다.
소송은 예상대로 보험회사의 승으로 끝났고 판결이 나자 나는 회사에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내 나이 37살이었다.
또다시 밖으로 내던져졌지만 난 이전의 나약한 내가 아니었다.
언젠간 또다시 법조계로 돌아올 것이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우선적으로 보험회사에 대한 패소금 1억 5천만 원을 해결해야 했다.
고민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개.인.파.산.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에 대한 채무가 아니라 보험회사에 대한 채무였으므로,
파산을 하더라도 비교적 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우선 내가 살아야만 했다.
밤을 새워가며 정성스레 개인파산신청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파산과 채무에 대한 면책까지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난, 당시 법률시장의 special 한 부분이었던 법인파산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모아놓은 5백만 원과 실업급여로 1년을 버티며 법인파산 과정을 마스터한다.
정확히 1년 후, 나는 보험회사에 대한 모든 채무를 면책받는다.
내 나이 38살이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산도 0, 부채도 0, 그러나 앞으로 발생할 우발채무가능성도 0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의 상태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법률지식이 들어 있었다.
충만한 자신감으로
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20명 밖에 없었던 법인파산관재인 사무실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4년 동안 나는 소위 말해 억대의 연봉을 번다.
그리고, 또다시 좋은 조건으로 사무실을 옮겨 현재의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 생각엔 현재의 사무실이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의 마지막 종착지가 아닌가 싶다.
(에필로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