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인해
결국 난, ‘금고 8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는다.
(당시의 판결문.
다행히 1년 후에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다.)
이제 완연한 전과자다.
이제는 경찰공무원이 될 수 있는 자격도 없어졌다.
마음 한편으로는 '일반공채 경찰로 시작하여 성실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내 나이 32살!!!
가족 누구도 믿지 않는 존재.
나만을 사랑한 여인의 인생을 망쳐버린 파렴치한.
온갖 거짓말로 지인들에게 돈을 꾼 채무자.
어느 것도 될 수 없는 전과자.
남아있는 수 천만 원의 채무.
현실이다.
더 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었다.
외로웠다.
나의 행동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지만,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분, 나의 어머니가 유일한 존재라면 존재였다.
엄마...
불러보니 눈물이 흐른다.
엄마는 내가 새벽녘에 형편없는 안주에 소주를 마시면 슬그머니 안주를 만들어 방으로 넣어주셨다.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또다시 대리운전을 시작한다.
새벽에 집에 들어와 소주를 마시고 잠이 들어
오후에 일어나 대리운전을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대리콜을 기다리며 누워있는데
나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가 울먹이며 한을 토해내신다.
“내가 널 어떻게 길렀는데... 우리 아들이 뭐가 모자라 이러고 있니. 대리운전이 뭐냐. 이 놈아.
시험을 볼 수 없으면 취업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우리 아들이 뭐가 못나서 이러고 있냔 말이다...”
난 그 말을 듣고 “난 뭐 이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내 속도 모르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른 후 집 밖으로 도망치듯 달려 나왔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비를 맞으며 동네의 벤치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래. 엄마의 소원이라는데 시도라도 해보자.”
집으로 돌아왔다.
현실적으로 그나마 내가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변호사사무실로 결론이 났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이트에 들어가 구인란을 보니, 나이부터 시작해 모조리 자격미달이었다.
내 경력으로는 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가장 큰 결격사유였다.
정성을 다해 이력서를 작성했다.
이력서 마지막란에는,
‘원하시는 자격보다 나이가 많지만 시작이 늦은 만큼
다른 신입직원보다 열.배. 백.배. 성실히 일하겠다’는 문구를 써넣었다.
로펌 2곳을 포함해 5곳에 원서를 넣었다.
4곳에서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결과 4군데 모두 합격통지를 받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취직이 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제는 일할 곳을 골라야 했다.
시작이 늦은 만큼 많은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면접 시, 업무량이 엄청나다고 엄포를 놓았던 개인변호사사무실을 택했다.
100.만.원.
나의 첫 월급이다.
남들은 적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주말 이틀 동안 대리운전을 해서 번 돈 10만 원으로
5만 원짜리 양복과 만 원짜리 셔츠 두벌, 3만 원짜리 구두를 샀다.
첫 양복을 입은 모습이 무척 어색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난 3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가족의 신뢰를 되찾자.
둘째, 나에게 주말은 없다. 매일 출근하자.
셋째, 최소한의 생계비를 제외한 월급을 모두 그녀에게 송금하자.
그리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시간이 흘러가며,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가족들도 날 믿기 시작하였고,
가장 죄스러웠던 그녀의 돈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월급도 170만 원이 되어 있었다.
처음 직장이었던 사무실에서의 4년 여의 시간 동안,
우리 사무실의 직원이 10명 정도 바뀌었다.
그만큼 힘든 사무실이었다.
일은 많았고 변호사님은 권위적이었다.
한 번은 변호사님이 준비서면을 하나 써오라고 해서 나름 열심히 작성을 했는데
날 부르더니 '이걸 준비서면이라 썼느냐'며 서류를 내 얼굴에 뿌렸다.
내 얼굴을 맞고 팔랑거리며 날아가다 바닥에 떨어진 10여 장의 서류...
난, 씩씩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잘 써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것들을 주웠다.
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내 맘속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악몽 같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못 버틸 것이 없었다.
꾹 참고 4년이 지나가자 웬만한 법률업무는 스스로 처리할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기간은 내 생애 가장 많은 공부를 한 기간이다.
그러던 중, 현재 내가 모시고 있는 분이자 내 주례를 서주신 변호사님께서
나에게 좋은 조건의 로펌으로 옮기라는 제의를 해오신다.
(일곱 번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