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가 아닌 생계를 위한 대리운전 3일째...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밤이다.
새벽 1시, 지친 몸을 이끌고 종로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걷고 있다.
띵똥~~~
성산동에서 등촌동까지 1만 5천 원!!!
잠시 고민한다.
대리운전 회사에 납입할 수수료와 성산동까지 갈 택시비를 빼면 내 손에 쥐는 돈은 6천 원이다.
그래 집 방향까지 공짜로 갈 수 있는 게 어디냐.
어차피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
콜을 잡는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술에 취한 중년여인이 차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 있다.
차에 올라타 인사를 한 후 성산동을 지나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향한다.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시야가 좋지 않다.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가양대교 방향으로 가기 위해 우회전을 하려는데,
옆에 앉은 중년여인이 갑자기 다급하게 사.람.사.람 하며 소리친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앞쪽에 길을 건너고 있는 젊은 커플이 보인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진눈깨비로 인한 미끄러운 노면 탓에 차가 말을 듣지 않는다.
5미터... 4미터... 3미터... 2미터... 젊은 커플과 차가 가까워진다.
난 눈을 질끈 감는다.
'쿵'하는 충격음과 함께 남자품에 안겨있던 여자는 허공을 날아 시멘트바닥에 떨어진다.
남자도 잠시 후 바닥에 풀썩 쓰러진다.
핸들에 고개를 박았다.
짧은 순간,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내리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택시들도 현장을 목격하고 모두들 내린다.
난 황급히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번호를 누른다.
911... 911... 통화가 되지 않는다.
너무나 당황을 하다 보니 119가 아닌 911을 누른 것이다.
누군가 신고했는지, 얼마 후 경찰차와 구급차가 함께 온다.
구급차가 젊은 커플을 태우고 빠르게 사라진다.
경찰은 나에게 경찰차에 타라고 한다.
뒷좌석에 앉는다.
혹시 몰라 차문을 열어보니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인생이 끝나는구나.
그동안의 일에 대한 벌이 내려지는구나.
그녀의 빚이라도 갚고 나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오만생각이 다 든다.
경찰서에 가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바로 교도소로 가는 건가?
교통사고처리반의 팀장이
날 안타깝게 봤던지 일단 귀가하고 최대한 빨리 합의를 하라고 한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구속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경찰서에서 나와
젊은 커플이 입원해 있다는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그들의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두려웠다.
찾아가니, 여자의 아버지가 울고 있다.
가서 무릎을 꿇는다.
아버지가 날 때리려고 손을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천만다행으로 두 사람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다만, 여자의 얼굴부위가 많이 다쳤고
남자는 양쪽 쇄골이 다 부러졌다.
죄인처럼 새벽까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불도 펴지 않고 방 한구석에 쭈그려 눕는다.
가위에 눌린다.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내 가슴에 올라앉아 칼로 내 목을 자른다.
거의 다 잘렸을 때쯤 겨우 힘을 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전화를 걸어 지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데 난 울고 있건만 그녀의 반응은 냉랭하다.
나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그녀도 변해있었다.
돈이 없으니 합의를 할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대리운전회사 사장은 내가 낸 대리기사보험료로 보험도 들지 않았다.
돈은 없지, 병원비에 합의는 해야 하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소변을 보니 피가 나온다.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벌이다.
날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피눈물이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며칠 후, 갑자기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다.
다음날 10시까지 경찰서로 나오라고 한다.
경찰서에 가니, 수갑을 채운다.
검찰이 10대 중과실에 미보험, 합의안 됨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한다.
11시에 영장실질심사가 있으니 판사에게 잘 말해보라고 한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20여 명의 죄목이 마약, 강간, 사기, 절도 등이다.
나도 이제 범죄자가 되는 건가.
영장판사 앞에 서니 오히려 담담해진다.
나의 사정을 얘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일순 법정이 조용해진다.
눈물을 쏟으며 마음속의 말을 내뱉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함께 간 경찰은
6시에 구속여부가 결정된다며
그때까지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유치장에 들어가니,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피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시간이다.
5분이 5년과 같았다.
6시가 되자...
김.*.*. 내 이름을 부른다.
영장이 기각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깊은숨을 들이쉬며 바깥공기를 폐부까지 넣는다.
(여섯 번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