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애벌레야 힘내!

by 산들


안데르센이 지은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가 있다.

우아한 백조가 우연한 기회에 오리들 틈에서 천덕꾸러기로 구박을 받다가 마침내 자신이 백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동화이다. 나는 가끔 나비 애벌레나 번데기를 볼 때마다 저들이 혹시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언젠가 화려한 변신을 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백조처럼 저 번데기 안에 멋진 나비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애벌레에 대한 어떤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어린 시절 맨 앞 페이지에 떠오르는 애벌레에 대한 기억은 송충이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속담에 나오는 소나무를 괴롭히는 바로 그 송충이 말이다. 그 무렵은 왜 그렇게 송충이가 많았던지. 낙이 없던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의 옷에 송충이를 집어넣음으로써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여자아이들은 질색팔색을 했고 남자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환호 작약했다. 얼마나 송충이가 흔했던지 심지어 아이들 별명조차 송충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한동안 애벌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물론 내 관심과는 별개로 당연히 그 시절에도 어딘가에 애벌레는 있었을 것이고, 또 질긴 생명을 이어갔을 테지만 내 관심은 애벌레에서 한참 비껴 나 있었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 동안 도시에서 애벌레를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도시는 애벌레가 살 만한 환경이 못 되는지 평소에 애벌레를 접한 기억은 별로 없다. 간혹 숲으로 갔으나 숲에서도 자주 애벌레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대체 그 많던 애벌레가 어디로 숨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이 없었다.


20210501_145739.jpg


그러다가 무주에서 진행하는 나비생태학교에서 나비 애벌레를 만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무주에서 만난 나비 애벌레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처럼 징그럽거나 혐오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자꾸 눈길이 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 분명하다.


그 앙증맞은 애벌레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잎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 모습은 감히 고백하건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꼬물꼬물거리며 떨어질 듯 하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잎을 넘나드는 모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어떤 애벌레의 맑고 투명한 몸통 색깔은 보고 있노라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도저히 세상의 색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KakaoTalk_20210929_121046061_02.jpg


다소 형태가 밋밋한 애벌레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자세히 보면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얼굴이 사과를 반쪽으로 쪼갠 모양이거나 뿔까지 달고 있는 귀여운 모습의 애벌레도 있었다. 앞뒤로 뿔을 흔들며 나뭇잎을 타고 가는 애벌레의 모습은 어쩌면 그리도 귀여운지 쉽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비 애벌레를 구분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애벌레의 얼굴을 찍어서 확인하는 것이다.


주변을 보니 나만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애벌레를 접한 이들이라면 대부분은 넋을 빼앗긴 듯한 표정이었다. 애벌레가 뭐라고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에 반해버렸을까? 세상에 나비 애벌레가 이렇게까지 귀여울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비 애벌레는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나뭇잎이나 줄기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나비 애벌레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20210911_092103.jpg


나비의 한살이는 알에서 시작해서 나비인 성충으로 끝난다. 성충으로 변신한 나비가 알을 낳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애벌레로 부화한다. 이러한 순환은 자연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나비의 생명력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다. 그렇다고 모든 알이 다 애벌레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삶의 논리가 이루어지는 야생에서는 나비 알을 노리는 새나 곤충이 많은 법이다.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긴 나비 알은 애벌레로서 또 다른 생애를 시작한다. 알이 애벌레로 부화하는 것은 나비로 가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조그마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던 알이 어느 사이에 눈부신 애벌레로 변한다는 자체가 내게는 기적에 가깝다.


어린 애벌레는 1령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애벌레 단계인 종령까지 먹이식물을 먹으며 성장한다. 먹성이 좋은 녀석들은 하루 종일 왕성하게 먹이를 먹어치우기 때문에 만약 애벌레를 키우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먹이 조달에 고생할 수도 있다. 특히 애벌레 덩치가 큰 산호랑애벌레나 사향제비애벌레는 먹어치우는 속도가 빠르다. 애벌레가 먹이식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무서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사향제비애벌레가 선호하는 쥐방울덩굴이나 등칡은 흔히 주변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키우려고 생각했다면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DSC_6001.JPG


시간이 지나면 애벌레는 다시 번데기로 한 번 더 변신을 시도한다. 나비가 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다. 부지런히 먹이를 먹던 애벌레가 움직임이 둔해지며 먹는 것을 멈추게 되면 드디어 번데기로 변할 시기가 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알이 애벌레로 변하고 다시 번데기로 바뀌는 걸 책이 아니라 눈앞에서 직접 보는 느낌은 경이롭기도 하고 이채롭기도 하다. 어떤 번데기는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보석을 박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려한 보석이 박힌 번데기는 영롱하게 빛나며 그 자체가 보석처럼 보인다.

20210612_112653.jpg


나비 알이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로, 그리고 마침내 나비로 훨훨 날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나비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가량 걸리기도 하고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나비의 한 생은 사람과 비교하면 더없이 짧지만 그 짧은 생에서도 여러 차례 변신이 일어난다. 알에서 부화하여 애벌레와 번데기, 그리고 나비로 가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나비는 환경에 매우 민감한 곤충이다. 적절한 습도와 알맞은 온도, 그리고 날씨 등 겉으로 보이는 변수 외에도 보이지 않는 변수들에 의해 어떤 알은 알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고 무사히 나비로 완주하기도 한다.


어찌어찌해서 번데기까지 갔다 할지라도 마지막 단계의 나오는 과정에서 우화 부전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보통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으로 변하는 것을 우화(羽化)라고 한다. 여기에 따라붙는 부전(不全)은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결국 나비에게 붙이는 ‘우화 부전’이라는 단어는 나비로 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뜻한다. 대개의 경우, 우화 부전은 날개에서 많이 발생한다. 아마도 우화 부전이야말로 나비를 사랑하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최악의 단어가 아닐까 한다.


나비를 키우는 일은 정성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나비를 키우는 과정에서 제때에 먹이를 구하는 일도 그렇고 수시로 배설물을 치워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일이다. 한두 마리야 그렇지만 종류가 많아지면 좋아하지 않는다면 고역에 가깝다. 만약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먹이식물에 곰팡이가 피거나 애벌레 상태가 안 좋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 자신은 식사를 못 챙겨 먹으면서도 나비 애벌레 먹이는 꼭 챙긴다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이 정도면 중증이 아닐까 싶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생명과 동행하는 일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비를 키우는 과정에는 나비에 대한 기대도 함께 큰다. 나비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면 나비를 향한 자신의 꿈도 함께 커가는 셈이다. 만약 키우는 애벌레가 먹이를 먹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마음 졸인다. 이런 형편이니 그동안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며 키웠던 나비 애벌레와 번데기가 정상적으로 나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절망적이다. 어쩌면 산모가 고통 끝에 새 생명을 낳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토록 고생한 결과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다면 그 마음이 오죽할까. 키운 이도 그렇지만 나비 역시 그 고생을 해서 왔는데 하늘을 날아 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눈물 나는 일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그동안 자연환경연수원에서 키우던 청띠제비나비 번데기가 막 우화를 앞둔 상황이었다. 나비 우화를 눈앞에서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럴 상황이면 사람들은 잔뜩 긴장을 한다. 번데기도 자칫 기생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는 없다. 보통 나비 번데기는 우화하기 직전에는 색깔이 변한다. 비교적 투명하거나 색채 변화가 없던 이전과 달리 번데기 몸체가 조금 더 어두워지거나 색깔이 짙은 붉은빛이 도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생명 탄생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기꺼이 열정을 기울인다.



KakaoTalk_20210929_121046061_01.jpg


마침 나비가 나올 법한 상황이어서 십여 명이 몰려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청띠제비나비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사진 동영상을 준비하던 이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그는 하필 화장실에 있었다. 그 중요한 순간에 어쩌면 그리도 시간을 맞추었는지. 허겁지겁 달려온 그는 아직 나비가 우화 하지 않았음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KakaoTalk_20210929_121046061_04.jpg


그런데 우화 중이던 나비가 힘이 달리는지 좀처럼 나오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보통 나비가 본격적으로 우화 할 때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곁에서 응원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달리 특별히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비는 여전히 나오지 못했다.


KakaoTalk_20210929_121046061.jpg


결국 그 나비는 우화 부전으로 날개가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로 세상을 달리했다.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도 실망으로 변했고,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장처럼 북적이던 빈자리를 무거운 침묵만이 채웠다. 어느새 나 혼자만이 나비 곁에 남았다. 조금이나마 짧은 생을 살았던 나비에게 그렇게라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씁쓸한 여운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아 나를 괴롭혔다.

우화 부전인 나비를 보았을 때의 마음은 철렁하다 못해 착잡하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태에서 온전하지 않은 상태의 나비를 보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자신이 관여할 수 없음에도 마치 그 잘못이 자신의 책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한계를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생과 사를 오가는 생명을 주관하는 신께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


한 번은 아는 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금 나비 우화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풀죽은 목소리가 답처럼 이어졌다.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전화를 했을 때도 역시 대기 중이라는 말이 되돌이표처럼 돌아왔다. 아마 그는 그 절정의 순간을 놓치기 싫어 번데기 앞에서 끼니를 때웠을 것이다. 대략 6시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대기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는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잘 되었을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혼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20210612_124452.jpg


아주 운이 좋게 산호랑나비가 우화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도 한참을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에는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는 게 큰 위안이었다. 우화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과정을 혼자 지켜보는 일은 여간 인내를 요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


20210612_123816.jpg


20210612_124306.jpg
20210612_124316.jpg
20210612_125345.jpg


미동도 하지 않던 산호랑 나비 번데기는 몇 번 요동치다가 조금씩 머리 부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몇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마치 기자들이 특종을 낚은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잠시 후 나비 머리가 나오고 이후 전체 나비 몸통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비 날개는 흠뻑 젖어 있어서 이게 과연 나비 날개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서 날개가 마르면서 조금씩 제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닌가. 그에 맞추어 산호랑 나비 특유의 호사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빛깔이 날개에 선명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20210612_130039.jpg


우리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눈앞에서 새로운 생명 탄생의 신비를 맛본 셈이었다. 나는 잠시나마 우주의 비밀을 엿본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가지에 매달려 있던 산호랑나비는 날개가 완전히 마르자 잠시 날개를 퍼덕이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한 번이라도 잠시 돌아볼 일이지 그것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산호랑 나비는 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훌훌 날아갔다. 모처럼만에 나도 잠시나마 나비와 하나가 된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20210515_121745.jpg


keyword
이전 09화나비 사진 찍어본 적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