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비를 공부하면서 나비나 애벌레 사진을 찍을 때마다 드는 고민이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살면서 나비 사진이라고는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비 사진을 찍자니 혼란스러웠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과연 나비의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였다. 나비 몸통에 초점을 맞추자니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이 흐려지고, 머리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부분이 애매하게 흐릿해졌다. 하지만 반복해서 찍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나비 얼굴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경우, 가장 안정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비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힘이 드는 것 중의 하나는 나비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나비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에 이미 나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핸드폰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을 찍는 이들이 카메라를 항상 찍을 수 있도록 준비상태로 두는 이유는 그냥 폼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나비처럼 움직이는 물체를 찍기 위해서는 속도가 생명이다. DSLR과 달리 핸드폰으로 찍을 때 화질이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나비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오늘따라 얌전한 뿔나비
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꽃이나 식물과 달리 나비는 대부분 이동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이 더 난해한 편이다. 꽃이야 찍는 이가 각도를 달리한다면 다른 느낌의 사진을 얻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나비는 차원이 다르다. 한 곳에 잠시 머물러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나비는 오래 앉아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닌다. 물론 예외가 있을 때도 있다. 바로 나비가 허기져서 꿀을 빨고 있을 때이다. 그런 때 나비는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꽃 안에 몸을 푹 들여놓고는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긴꼬리제비나비가 무궁화에 고개를 처박고 꿀을 빠는 모습은 장관이다.
꽃을 찍을 때 가장 큰 난관은 바람이다. 바람이 불어대면 꽃의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바람 때문에 꽃이 흔들려 사진을 찍기 어려운 것은 나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상태이기에 공을 들여서 나비 사진을 찍어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래도 숙련된 전문가들은 조금 덜하겠지만 나비 사진계에 입문한 초보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난관일 것이다. 또 다른 난처한 문제는 사진을 많이 찍은 것 같아도 막상 나중에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면 마음에 드는 사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이는 언젠가 나비 사진을 몽땅 찍은 후, 집에 가서 사진을 확인해 보니 쓸 만한 사진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지워 나가다 보니 결국 나중에는 남는 사진이 없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일이 비단 그이 혼자만의 해프닝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공들여 찍은 나비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속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꽃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도 나비는 그렇지 못하다.
추석 무렵, 진안에 있는 덕태산에 갔었다. 잠시 땀을 식히며 쉬고 있는데 큰멋쟁이나비가 참나무 수액을 빨아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장소가 마음에 드는지 다른 곳으로 갔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청띠신선나비가 살포시 앉는 게 아닌가. 급한 마음에 사진을 찍기는 찍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아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나비가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기에 좀 더 기다려보자고 작정하고 앉았다. 그런데 웬걸 나비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해서 어디에도 쓸 수 없는, 기막힌 청띠신선나비 사진을 얻었다.
아, 다시 봐도 그리운 청띠신선나비
큰멋쟁이나비
강원도 평창에 있는 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내려오는 길에 알락그늘나비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나비에 선명한 줄무늬가 인상적이었다. 무조건 이 나비 사진만은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나비가 한 곳에 앉지 않고 점차 우거진 풀숲 안으로만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찌해서 나비의 옆면 사진만을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만나서, 만나지 못해서 아쉬움이 큰 알락그늘나비
눈앞에서 어른거리면서 찍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나비들을 보고 있노라면 야속하기만 하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비웠을 것을 눈앞에 아른거리니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일행이 먼저 내려간 후에도 한참을 기다렸으나 알락그늘나비는 끝내 다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강원도까지 4시간을 넘게 달려간 터라 그런 곳에서 만난 나비들은 꼭 사진에 담고 심은 마음이 크다. 그때도 생전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다음에 언제 다시 또 올 수 있으랴 하는 아쉬움에 한참을 머물렀지만 소용없었다. 다음을 언제 기약할 수도 없는 나비라서 아쉬움은 더 컸다. 만약 나 혼자 갔더라면 그 나비를 볼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때 찍으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미루거나 망설여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외 출사 시 마음에 드는 나비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은 후 아는 사람을 부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나비는 휘리릭 날아가버린다. 부른 이도 달려온 이도 허탈할 수밖에 없다. 나비 사진을 찍다 보면 이런 일이 허다하다. 그러니 나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때 어떻게든 찍는 수밖에 없다. 다음이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 단언하건대 다음은 없다. 차라리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게 이 바닥의 진리이다.
가끔 연사로 나비 사진을 찍는 이도 있다. 한 번 셔터를 누르면 기관총 소리가 난다. 한 번에 수십 장은 기본이다. 그이의 지론은 그 사진 중에 한 컷만 건지면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거창하게 한 방을 노리는 건 아니지만 무미건조한 삶에서 한 번쯤 화끈한 그런 반전이 생긴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어쩌면 내 인생에서도 그런 사진을 몇 장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십 수백 장의 나비 사진을 찍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단 몇 컷을 찍어도 마음에 드는 순간을 포착하면 그만이다. 가끔 카메라로 연사를 찍는 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대개 그런 경우는 망원렌즈를 이용해서 멀리 있는 나비를 찍는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진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그들이 60이나 105mm 단렌즈나 핸드폰으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멋진 사진을 얻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비를 공부하고 난 후에는 나비 사진을 볼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예전이라면 몰랐을 테지만 나비 사진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사진을 보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이 사람은 이 사진을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랜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을까? 아마도 이 한 장의 사진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자신이 찍었던 수많은 사진 중에서 고르고 골랐을 수도 있다.
나비 사진 행간에 숨겨진 그 사연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나비 사진 속의 세계로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러면 드넓은 초원에 핀 꽃들 사이로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덩달아 여치가 뛰어다니고 풀노린재도 가끔 보인다. 벌이 왱왱 날고 나비는 정신없이 꿀을 빨고 있다. 언젠가 내가 찍은 나비 사진도 누군가에는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