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알을 보신 적 있으세요?

by 산들



이게 정말 나비 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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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알을 난생처음으로 보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알, 사실 처음 보았을 때는 알이라는 느낌보다는 작은 먼지나 좁쌀이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 작은 알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나비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심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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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꼬마표범나비 알, 사진 제공: 오해용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나비들이 이 자그마한 알에서부터 출발한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기는 나비 생태학교를 시작하던 무렵에는 나비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으니 나비 알이나 애벌레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살면서 나비가 알을 낳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기억이 어디에도 없다. 이전까지는 알이 사랑스럽다거나 예쁘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언젠가 보았을 알 무더기에 대한 다소 징그러운 느낌이 여운처럼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용하게 쓰일 때도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도 많다. 특히, 자연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싶을 정도로 알려주는 게 없다. 이런 상황이니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꽃이나 나무 이름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 역시 봄에 꽃이 피면 꽃이 피나 하면서 세상을 살았다. 물론 봄에 피는 벚꽃이나 가을 코스모스처럼 꽃 이름을 아는 것도 있었으나 내게 대부분은 그저 꽃일 뿐이었다. 나무는 더 심했다. 이름이야 감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줄줄이 말할 수 있지만 실제 나뭇잎을 보여주거나 겨울에 앙상한 나무를 보고 이름을 말하라면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다. 이런 상황이니 나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특히 자연에 관한 부문은 더 그렇다. 안도현 시인도 <애기똥풀>에서 꽃 이름을 모르고 살았던 자신을 반성한 적이 있지만 당시 내 형편이 딱 그 모양이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안도현, 애기똥풀


예전부터 산을 좋아해서 무작정 다니기는 했으나 그 안에 사는 식물이나 곤충, 동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남들이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자연을 가까이하면서도 식물과 곤충을 모르고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달리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 놀라운 진실과 마주한 나는 한참이나 넋을 잃고 알을 쳐다보았다. 알은 풀잎에 떡하니 달라붙어 있었다. 나비 알은 대개 하나나 둘이었는데 누군가 그걸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는 사실도 당시에는 놀랍기만 했다. 더 큰 충격은 그다음에 발생했다. 니콘 D-500 카메라 접사로 알을 찍은 사진을 화면으로 보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저 밋밋한 원이라고만 생각했던 알에 선명한 주름이나 독특한 무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떤 알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눈부신 조형물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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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무늬팔랑나비 알, 사진 제공: 오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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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남노랑나비 알



알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계란이나 오리알 정도에 불과했던 나로서는 나비 알에 그와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어떤 알은 원형이 아니라 쌀알 모양처럼 길쭉하기도 했다. 하기야 나비에 관한 한 나는 아는 게 정말 없었다. 처음 나비 알을 만나면서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무식이 통째로 탄로 나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모르고 살던 새로운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비나 나비 알을 대하는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본 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처음에 알을 찍은 사진만 보았을 때는 그게 나비 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 그 말을 했다 하더라도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나비 알이 생각 이상으로 작아서 사진으로 찍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핸드폰으로 찍다 보니 초점을 맞추거나 알의 형태를 제대로 담아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막상 사진을 찍었다 할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속도 타들어갔다.


이래서 카메라용 접사링 이야기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나비 알은 작아서 육안으로도 구분이 쉽게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카메라 접사로 찍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 예술품이 없었다.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잘 찍은 나비 알은 정말 근사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게다가 나비 알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니 마치 천재적인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건축물을 만들어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알과 친해지고 싶었으나 문제는 사진을 찍을 만한 장비가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핸드폰 카메라로는 알의 윤곽만이 흐릿하게 잡힐 뿐이었다.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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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있던 캐논 카메라용으로 접사링을 구매했으나 어찌 된 셈인지 카메라는 초점을 잡지 못했다. 카메라 전문점에 가보니 본체 상태가 좋지 않아 본사로 보내서 점검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난감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나비 생태학교에서 알을 찍어야 하는 순간이 나오더라도 피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차피 사진을 찍어야 나오지도 않을 테니 하는 심정이다 보니 아마도 어느 정도 자포자기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호기심 가득했던 알에 대한 관심도 한여름 땡볕에 남겨진 채소처럼 급격히 시들해졌다.


사그라들던 알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난 건 현장에서 나 스스로 알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나비가 그냥 아무 데나 알을 낳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나비는 알이 부화하고 난 후 애벌레의 성장에 필요한 먹이식물에 알을 낳는다. 예를 들면 호랑나비는 초피나무에, 사향제비나비는 쥐방울덩굴류, 청띠제비나비는 후박나무에 알을 낳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피나무만 먹는 것은 아니고 산초나무나 탱자나무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함께 알았다. 나비가 한꺼번에 무더기로 알을 낳기도 하지만 한두 개를 낳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낳기도 하는 것도 어쩌면 나비 생존을 위해 터득한 본능이리라.


제주도에 갔을 때,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식당 앞에 커다란 후박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잠시 둘러보더니 청띠제비나비 알과 애벌레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어서일까 밥을 먹는 도중에도 마음은 내내 식당 앞 후박나무에 꽂혀 있었다.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와 나뭇잎을 뒤적이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진짜 거기 알이 있었다. 나비가 신선한 새잎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어린잎 뒷면을 찾아보니 보물처럼 영롱한 알이 있었다. 그날 마치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청띠제비나비 알과 애벌레를 찾으면서 비로소 나비 알 찾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나비 알을 만나게 된 이후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로 나비가 알을 낳는 장면을 포착하는 일이다. 이전이라면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산란기를 맞이한 나비는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다가 알을 낳기 전에 꼬리를 잔뜩 구부려 식물 위에 알을 낳는다. 그 모습을 보고 찾아가면 어김없이 사랑스러운 알이 있었다. 나비는 알을 낳고도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불과 1~2초에 불과한 시간에 모든 게 이루어진다. 한편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매정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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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과 관련해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제주도 한라산에서 천연기념물 458호인 산굴뚝나비가 알을 낳는 현장을 직접 보았던 일이다. 워낙 희귀한 나비라 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던 터였다. 윗세오름을 지나쳐 한라산 남벽 방향으로 가다가 우연히 산굴뚝 나비를 발견하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간신히 나비 사진을 찍으려는데 눈앞에서 나비가 알을 낳는 게 아닌가. 다행히도 일행 중 내가 가장 가까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땅바닥에 엎드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건만 실제 사진에는 그 장면이 선명하게 담겨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게 그 사진은 한라산에서만 산다는 그 귀한 나비가 산란하는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훈장처럼 남아 있다.

한여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던 한라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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