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단순한 기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행은 현실이다.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은 현실의 바뀐 얼굴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우리를 맞이한다. 삶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여행의 순간을 지나왔다. 여행을 마치는 날, 우리는 이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을 할 것이다.
돌아오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름다운 풍경이 떠오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물건이 생각날 수도 있다.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미소 띨 수도 있고 반면에 서운한 여행이었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여행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여행지에서 당신이 만난 시간과 공간은 이제 당신의 추억으로 변하여 죽을 때까지 남는다.
어쩌면 여행은 실제 여행지에서보다 떠나기 전이 더 즐거울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마음이 여행을 기다리는 내내 설레게 한다. 여행을 기다리면서 여행지의 동선을 짜거나 맛집을 검색하거나 평소 보고 싶었던 풍경을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때로 이 모든 과정은 고달플 수도 있고 짜증이 나거나 때에 따라서는 여행 자체를 때려치우고 싶을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여행이 빚어내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여행은 기다리는 내내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마력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마음이 맞는 이와 떠나는 여행도 있다.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여행의 묘미가 있고 같이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마음이 맞지 않는 이와 떠나는 여행만큼 곤욕스러운 일도 없다. 여행지에서는 다른 곳으로 피하거나 도망칠 곳도 없다. 그러니 여행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꾹 참고 견뎌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때로는 이러려고 여행을 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 그냥 같이만 있어도 저절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웃으며 여행을 떠났다가 싸우고 돌아온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신혼여행이 이혼여행으로 변했다는 말도 나온다. 여행지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잠자리도 음식도 평소와 다르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자기 몸이 힘들면 보통 때는 숨겨두었던 본색이 나온다.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차리던 이들도 어려운 상황이면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다. 그럴 때면 평소 보던 것과 다른 모습에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 여행지에서는 낯선 외로움이 찾아들기도 한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찾아오는 외로움은 특별하다. 나 혼자 남겨진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자신의 내밀함과 가장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평소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만있어도 외로움이나 서글픔이 울컥 밀려들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그렇다 하더라도 좀 슬프거나 우울하면 또 어떤가. 여행에서는 자신에게 솔직해도 좋다. 그동안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을 옥죄었다라면 여행지에서는 좀 풀어줄 필요가 있다. 여행에서는 그래도 된다. 여행에서 주인공은 당신 자신이니.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먹으면 혼자 그 멋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누구나 떠나는 여행이지만 대부분의 여행에는 공통점이 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끝날 때는 빨리 지나간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는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길게 여행을 잡건 짧게 잡건 끝날 무렵의 느끼는 시간의 체감 속도는 무지 빠르다. 돌아보면 아쉽거나 만족스러운 여행은 있어도 시간이 느긋하게 갔던 여행의 기억은 없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5월은 여행 다니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날씨도 좋고 그리 덥지도 않으며 비가 올 확률도 높지 않다. 게다가 5월 연휴가 있는 날이면 더 그렇다. 5월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고 어디든 가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데 집에 있으면 혼자 바보가 되는 느낌이랄까. 비록 행사가 많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이 무렵이면 어디든 갈 곳이 없을까 고민이 든다.
작년에 서귀포에서 보았던 새우란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터라 망설이지 않고 제주행을 택했다. 제주를 떠올리는 대개의 육지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리라. 제주라는 이름에는 마력이 숨겨져 있다. 제주는 육지 사람들에게 이국의 땅이자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이미 제주를 가보았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러니 누군가 제주를 간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 한편에서는 부러움이 들고 질투가 은근히 솟아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행 고수들은 흔히 말하는 성수기에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가고자 하는 이는 넘쳐나고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이 되어 있다. 그 결과 물가는 비싸고 호텔방은 잡기 힘들고 도로에 차는 넘친다. 여행지에서도 한철 손님을 받아 1년을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이때 총력을 기울인다. 성수기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현지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이는 날씨를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기 예보를 검색해도 날씨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면 여행을 즐기는 편이 낫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다행히 마음이 맞는 이와 함께 떠난다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여행지에서 혼자 먹는 음식은 영 맛이 나지 않는다. 혼자 마시는 술도 그렇다.
제주는 잠시 숙소 밖으로만 나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해안지대에 가면 염생식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식물군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식물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섬이라는 특성상 육지와는 식생이나 형태가 다른 군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평소 아는 식물이라도 간혹 헷갈리기도 한다.
이번 제주 식물탐사에서는 대략 300여 종 이상을 본 것 같다. 하루에 100여 종을 보았으니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그중에는 내가 식물을 공부하면서 처음 들어본 식물도 제법 많았다.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짐을 챙겨나가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식물을 보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부지런히 다닌 덕분에 풍성한 식물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돈나무는 가장 흔히 보이는 나무이다. 이 무렵 꽃이 화사하게 핀 돈나무는 제주도에서 가장 돋보이는 나무이기도 하다. 돈나무는 지역에 따라 섬음나무·갯똥나무·해동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제주 사람들은 돈나무를 ‘똥낭’, 즉 똥나무로 부른다. 이는 열매가 겨우내 끈적한 점액질에 싸여 있기 때문에 온갖 곤충과 벌레들이 모여들어 지저분하게 보이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들은 돈나무라는 이름 때문에 실제 돈나무는 ‘돈’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데도 돈을 많이 벌라며 선물하기도 한다.
며느리밑씻개의 경우, 5월인데 육지와 달리 이미 꽃이 피었다. 숙소 근처 해변가에서는 분홍빛이 선명한 갯장구채도 흐드러지게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도 제주가 주는 축복이다. 언뜻 보니 길가의 염주괴불주머니도 노란 꽃이 만발해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한반도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이른 봄이 열린다. 하기는 지금이 여행하기 제일 좋은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