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논에 다녀왔다. 더 늦기 전에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일은 특히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옥수수도 심는 시기를 놓치면 제대로 영글지 않거나 맛이 덜하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5월에 일이 하나 더 늘었다. 평생 농사일이라고는 대학시절 농활 해본 경험이 전부인 나로서는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들은 개인농장으로 몇 평만 해도 먹거리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고 자신이 감당할 만큼만 심는다고 했다. 초보 농사꾼들은 처음 시작할 때는 의욕에 차서 이것저것 심지만 나중에는 자기 처지를 이해하고 먹을 만큼만 짓는다고 한다. 하기는 어차피 수확물이 많아도 처치 곤란이다. 누군가는 농사짓기보다 주변에 나누어주는 일이 더 고역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받는 입장에서도 처음 한두 번은 고맙겠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난감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10평도 많을 법한데 내게 주어진 땅은 250평. 그동안 논농사를 했던 땅이라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가보니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풀이 우거지고 그동안 방치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사방에 깔렸다. 영 관리가 안 되었음을 한눈에 보아도 알 만 했다. 농사를 짓지 않은 상태로 몇 년을 묵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에는 농사를 시작한다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으나 일을 하다 보면 괜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선 장비를 장만했다. 70년 전통의 대장간에서 호미와 괭이를 사고 삽도 장만했다. 집 근처 철물점에 가지 않고 거기까지 가서 산 것도 내가 처음 하는 농사일에 대해 의미를 두기 위해서였다.
혼자 가서 풀을 베고 있노라면 땅이 운동장처럼 보였다. 저질 체력이 아님에도 농사일은 힘들었다. 처음 논에 갈 때는 의욕에 넘쳤지만 일을 하다 보면 웬만큼 해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땅을 파다가 옆을 보면 아득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그래도 고랑을 파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나름 뿌듯했다. 로터리를 치고, 사실 이번에 로터리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았다, 나니 그나마 농사 지을 만한 땅처럼 보였다. 거기까지 가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었다. 나는 주변에 농사에 익숙한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비슷했다.
팔 것도 아닌 데 그냥 편하게 하세요. 열리면 좋고 안 열려도 경험 삼아서.
그렇다. 역시 전문가들은 노련했다. 이제 막 시작한 초보 농사꾼의 의욕을 꺾지 않았다. 일단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도 경험도 부족했다. 그런 내게 필요한 건 이미 그 길을 걸어간 누군가의 작은 격려와 위로였다.
고생하시네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다 들어있었다. 하기야 이제 처음 하는 데 무슨 말을 더하랴. 전문가 입장에서 초보는 서툴고 무엇을 해도 어설프기 마련이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그들이라도 할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다들 전화로만 하는 조언이라는 점이었다. 그나마 조금 나은 게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정도였다. 또 다른 전문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고생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하기야 많이 열리면 무엇하겠는가. 솔직히 나는 1년에 옥수수를 10개도 먹지 않는다. 아니 10개도 많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이는 하루 종일 옥수수만 먹으면 좋겠다지만 나는 절대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런 내가 250평에 옥수수를 심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이미 가을에 먹을 옥수수는 확보한 상태였다. 보은에서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장샘은 이렇게 말했다.
옥수수 씨를 심을 때는 2cm 정도만 땅을 파고 두 알 심고 흙을 덮으면 됩니다. 그걸로 끝! 그리고 나중에 제초제 한 번 하세요.
그러면서 막대기로 꾹 눌러서 구멍을 만들고 두 알 심고 발로 툭 차면 된다고 했다. 하하.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다들 농사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는가. 말만 듣고 나면 농사를 진짜 쉽게 짓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막상 땅 앞에 서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게 농사일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어떻게 옥수수 재배에 대해 그리 많이 아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비료를 많이 주면 옥수수가 넘어져요.
아, 그런가요?
농사와는 전혀 친하지 않을 이가 들려준 조언이다. 그날 나는 비료를 많이 주면 옥수수가 넘어진다는 사실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알았다. 평소 옥수수와 전혀 무관할 것처럼 보이는 이도 옥수수에 대해 알고 있었다. 평생 나만 모르고 산 느낌이 들었다.
처음 목표는 고랑을 만들고 둔덕을 높여서 비닐을 치고 구멍을 뚫어 옥수수를 심는 것이었다. 논의 특성상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린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 둔덕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며칠을 어둑해질 때까지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일을 했건만 그다지 진도는 나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비닐 계획을 접고 그냥 노지에 파종을 하기로 했다.
내가 심어야 할 옥수수 씨앗은 1,500개였다. 그것도 그냥 옥수수가 아니라 맛 좋기로 유명한 대학 찰옥수수였다. 옥수수 한 알에 하나의 옥수수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구멍 하나에 옥수수 두 알을 심으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세 알을 심으라고 했다. 다들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심다 보니 두 알이 되는 경우도 있고 네 알이나 다섯 알이 되기도 했다. 정말 세상일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마침 박형근 샘이 단호박 모종을 가져오셔서 옥수수 옆에 심었다. 직접 씨앗 심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처음 시작부터 일의 진척과정을 다 아시다 보니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고 영 미더웠나 보다. 땅을 고르며 호미를 다루는 데 역시 고수의 풍미가 느껴졌다. 문제는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말라버린 땅이었다. 어제 가보니 건조해서 그런지 호박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두 차례 정도 직접 물을 담아가서 주기는 했지만 이 가뭄에 잘 버티고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250평의 땅에 물을 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신의 능력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땅에 잊지 않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의 능력은 가늠하기 힘들다.
1,500개의 옥수수 씨앗은 나 혼자 감당하기에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에 나누어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한낮에는 하지 못하고 주로 오후 늦게부터 시작해서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씨앗을 심었다. 일을 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경험이라고 생각하라지만 나로서는 나름 기대가 크다. 심은 씨앗 중에서 얼마만큼의 옥수수가 나올지 모르지만 아마 싹이 나기 시작하면 땅에 가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옥수수 씨앗을 다 심고 나니 요즘처럼 뜨거운 햇볕 아래 옥수수가 과연 싹을 틔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잠깐이라도 비가 내리면 좋으련만 당분간 비 소식은 없다. 엊그제에는 흐리기에 잠시 기대를 했건만 여전히 쨍쨍하다. 그런 일이야 생기지 않겠지만 이러다가 옥수수 씨앗이 하나도 안 나오면 나는 많이, 아주 많이 슬플 것 같다.
*이번 농사가 끝나고 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농사 역시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다. 농사가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아마 자연의 위대함 앞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승복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