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나무

by 산들


오늘 숲해설가 교육시간에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무와 숲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그 안에 나무나 숲을 그려야 했다. 그림에 서툰 이거나 그렇지 않은 이거나 주어진 5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한동안 잊고 있던 과거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밖에는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고 우리는 답답한 강의실에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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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때로는 아련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수십 년 동안 묻혀 있던 기억을 내놓자마자 갓 잡은 오징어처럼 싱싱하게 펄떡였다. 오래 전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아니면 본인 키만큼이었을 수도 있고 더 컸을 수도 있다. 그 옛날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는 나무는 지금은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 나는, 그리고 당신은 거기 있었다.


그런 것보다는 우리에게 그런 나무가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이름도 모르던 나무, 고향 마을에 있던 팽나무, 올라갔다가 떨어진 감나무, 바람이 불 때마다 힘차게 잎을 펄떡이던 메타세쿼이아, 숭숭 부는 바람을 끌어안고 살던 대나무, 우리는 그런 나무들을 평생 동안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한동안 굳게 닫혀 있던 기억의 문을 열고 나니 나무만이 아니라 나무에 얽힌 다른 이야기도 함께 딸려 나왔다.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우리는 현재의 문을 열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단순히 나무나 숲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고향의 어머니 이야기가 거기 묻어 나왔고 오빠 이야기도 있었다. 심지어 한국 전쟁 이야기까지 나왔다. 어린 시절 찬란하게 빛나던 추억들이 5분의 시간을 뚫고 우리 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런 느낌은 참 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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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우리는 좀 더 재미있었고 즐겁고 신이 났을 것이다. 우리 또래라면 충분히 공감했겠지만 당시에는 먹을 것이 풍성하지 않았고 놀거리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기억들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빛나게 남아 있다. 가끔 찌질하게 느껴질 법한 이야기가 수십 년 동안 이야깃거리로 살아 남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오기도 하는 것은 허기진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추억은 내 안에서 빛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어쩌면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을 만큼 진짜 힘들었을 수도 있다. 지금도 악몽에 시달릴 수도 있다. 죽어도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을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지금 내 곁에 없는 부모님이나 둘도 없는 친구이거나 아껴주던 친척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도 그쯤은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잘 견뎌주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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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그런 나무가, 그런 숲이 있다. 제주 붉은 오름을 걸을 때 햇살에 출렁이던 숲은 얼마나 깊게 다가왔던가. 울창한 고사리 숲이 넘실거리며 말을 걸어올 때 또 얼마나 숨이 막혔던가. 덕유산에서 만난 싱그러운 산오이풀이 바람에 흔들릴 때 눈물이 났다. 강원도 화악산에서 금강초롱을 만났을 때는 그 고운 빛깔에 한참이나 넋을 잃고 있었다. 백두산 깊은 숲길을 건널 때 만났던 나이테를 엄청 가지고 있던 나무도 생각난다. 그 모두가 그때 생각을 할 때마다 다 살아서 내게로 온다. 우리는 그 추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에게 잠시나마 다시 돌아갈 나무나 숲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게 그런 나무와 숲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앞으로 우리는 살면서 또 수많은 나무와 숲이 들려주는 사연을 들을 것이다. 나무가 햇살에 맨 얼굴을 반짝이며 잎을 펄럭이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볼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만남이라면 얼마든지 양손 들어 반기고 싶다. 채 5분 남짓한 시간이 우리에게 빛나는 순간을 돌려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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