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작가와의 만남에 앞서 전주꽃심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원화 전시회를 보았다. 그곳에서 원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우연히 찾은 도서관 입구에 ‘다시마 세이조 그림책 원화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림을 봐도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았다. 아마 그림책 원화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계속해서 보다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특히 <잡았어>에 나오는 아이 그림은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닌가. 텅 빈 종이에 물고기를 잡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살아 있었다. 어떤 그림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는 건, 그 그림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예전에 30년 전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오베르 교회 가는 길>을 보았던 그 느낌이 묻어났다. 물론 그때는 숨이 멎을 만큼의 강렬함이 왔으나 이번은 살짝 그 느낌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작품은 따뜻했고 일부 작품은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이 있었다. 만약 내 몸 어딘가에 동심이란 게 남아 있다면 그의 그림에 환하게 웃으며 응답을 했을 것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니 작가의 작품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동화에 대한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있다. 바로 쓰기 쉬울 거라는 착각이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사실 많은 작가들의 오랜 꿈 중의 하나는 동화나 동시를 쓰는 일이다. 다들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그렇다면 다시마 세이조 작가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어떤 힘이 있어서 그들을 책 앞으로 불러 세웠을까? 그게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려서거나 스토리가 훌륭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신의 작품집을 절판시키기에 이른다. 이전 작품의 이미지가 강해서였을까. 이후 5년 만에 나온 작품 『'이봐 자갈이 떨어졌잖아, 잊어버리자』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다시마 세이조의 풍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석판화라는 조금은 이질적인 방식에 낯선 화풍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전화위복이었을까. 이 사건은 다시마 세이조에게 본연의 자신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때로 예술에는 실험적인 것도 나쁘지 않지만 독자들은 변화를 싫어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평소 익숙한 데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싫어한다. 아무튼 그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의 사랑스러운 염소 시즈카는 살아남았다.
강연장에서 했던 작가의 말 몇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읽었을 때 금방 읽기 쉽고 알아듣기 쉽고 그리고 금방 다 이렇게 기뻐할 수 있는 그런 그림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어린아이, 사내아이라든지 한 사람의 엄마,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꽉 잡고 그 사람의 인생을 흔들 수 있다면 그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은 작품이 필요하지 않다. 살면서 절실하게 필요한 한 마디가 있는가 하면 그냥 흘려보내도 좋을 말도 많다.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고 그 인생을 흔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표현, 작가라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유혹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지금까지 그 길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 짧은 시간에 작가의 영혼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사인회 때 작가에게 미리 준비한 내 시집과 창작 노트를 증정했다. 나는 책에 <숲의 유혹에 빠질 때>라는 책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드립니다”라고 써서 드렸다. 작가는 내가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쓴 글에 나온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 산자고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꽃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말을 따라 ‘산자고’라고 나지막하게 따라 했다. 그중 창작 노트에 있는 민화 그림을 보고 ‘기레이다’라고 가벼운 탄성을 지었다. 그러더니 내가 직접 그렸냐고 묻는다. 나는 우리 선생님께서 그렸다고 답했다. 그는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책 한편에 큼지막한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주었다. 바로 <잡았다>에 나오는 그 물고기였다.
1층에서 도슨트에게 원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데 불쑥 작가가 다시 나타났다. 그 역시 자신의 원화 전시는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설명을 듣던 우리는 그의 원화를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언젠가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꼭 이 작가처럼 하고 싶다.
그의 나이까지 버틴다면 어쩌면 할 수 있을 법도 싶었다. 사진 몇 장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다음 일정을 향해 떠나갔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그의 작품만이 남았다. 아마 내일이면 그의 혼이 깃들어있던 그림책 원화도 다시 일본으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끔 사진에 남아 있는 그의 작품과 5월 끝자락에 만났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생태작가 다시마 세이조를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