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찾은 곳은 신안 보물섬과 관련 있는 ‘신안유물발견기념비’였다. 1300년대 중국 항조우에서 출발한 무역선을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가던 중에 침몰한다. 후일 신안 보물선으로 불리는 그 배는 그렇게 70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갯벌에 묻혀 있다가 어부에 의해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첫 시작은 도자기 몇 점이었지만 끝은 장대했다. 10차례에 걸친 발굴으로 무려 2만 점이 넘는 도자기와 25톤의 동전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물섬’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꿈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다. 지금도 보물을 찾는 이야기나 보물선을 다룬 소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최근 개봉안 <언차티드> 역시 탐험가 마젤란이 황금을 발견했다는 소재로 사람들의 발길을 영화관으로 이끌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보물은 거의 획정화되어 있었던 신분제도의 단단한 틀을 깨뜨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막대한 부를 상징하는 보물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신분 상승이나 기회 역전이라는 말과 통한다. 보물은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타개책이자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보물이나 보물선 소재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내가 어린시절 읽었던 <신밧드의 모험>이나 <알라딘 이야기>를 비롯하여 동화에는 수많은 보물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은 황금과 보석과 관련한 이야기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보물 이야기도 나온다. 성서에는 숨겨둔 보물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대신 종교에서는 보물이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촉구하기 위한 도구로 많이 활용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보물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한 소재이다.
지금은 당시 유물이 발굴되었던 장소에서 2km 떨어진 곳에 청자모형의 항아리 부표만이 남아 있다. 내가 앉아 있는 동안 사람들은 후다닥 와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바다를 훑어보고 사라졌다. 그들에게 보물이란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만나고 싶은 그런 아련한 꿈일 것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꿈에나 나올 법한 보물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고 현실적인 로또나 복권으로 욕망을 대신하곤 한다.
당시 배에 탔던 이들은 자신들의 가혹한 운명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항해가 끝나면 한몫 단단히 챙기고 결혼을 하거나 가족을 부양할 생각에 부풀었을 수도 있다. 그들도 자신들에게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긴 여정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그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들의 꿈도 함께 바다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기억 역시 사라져버렸다.
발굴은 신안에서 했지만 현재 신안 유물은 광주국립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그래도 딸랑 기념비 하나만 남겨 놓기보다는 일부 유물이라도 신안에 전시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수만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음에도 우리는 이곳이 한때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안 보물섬의 주배경지라는 사실은 아쉽지만 기념비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곳을 찾은 이라면 상상의 힘을 빌어서 현실의 결핍을 대체할 수밖에 없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는 우리에게 환상과 꿈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신안 보물선도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바다에 길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보물섬으로 가는 길이 있다.
평생을 찾아 헤매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이도 있고
운이 좋아 눈앞에서 보물선을 발견한 이도 있다.
물살 험하고
바람 많이 부는 날은
이곳 앞바다도 많이 흔들렸으리라
배에 탄 선원들도 비명에 놀라 자지러지고
바다가 들썩들썩 추어대면
춤에 엉겁결에 팔도 몇 번은 휘둘렀으리라
어떤 배는 운 좋게 지나가고
또 어떤 배는 고약한 일을 당했다
몇백 년도 훌쩍 지난 어느 날
바다로 가는 길이 열려서
사람들은 몇 백 년 동안 숨어 있던 그 시대를 만난다
길을 나는 이들은 다 사라지고
그때 찬란했던 문화도 바다에 잠기고
목적지에서 가족들을 만나는 선원들의 기대도
저 물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지금은 저곳이 한때 사람들의 꿈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표만 있을 뿐
아직도 바다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바닷길을 찾아 오늘 또 누군가는
길을 떠날지도 모른다
- 보물선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