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만나는 순간

by 산들




살면서 식물을 보기 위해 제주도를 찾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제주도를 관광이 아니고 식물을 보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혹시 주변에서 식물 보러 제주도를 간다고 하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만약 당신에게 이런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대개는 어이없어할 것이다. 심하면 화를 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여행이 그랬다. 3박 4일 내내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고 나와서 저녁에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식물만 보았다. 생각해 보면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꽃과 나무만 보러 다녔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동행한 박샘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하기야 식물에 미치지 않고야 어찌 3박 4일을 식물만 보며 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이틀째, 우리는 서귀포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작년에 나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던 한라 새우난을 보기 위해서이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은 새우난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 감동이 몇 개월 이상 갔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무렵 제주도 절물휴양림에 가면 입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게 새우난이다. 여러 종의 새우난 수백 송이가 핀 모습은 장관이다. 하지만 야생에서 보는 새우난과는 그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문제는 작년에 두 번이나 갔지만 도무지 어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휴양림 근처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날 뿐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어느덧 길은 끝나가는 데 도무지 어디인지 길을 찾지 못하겠다. 그래도 일이 되려다 보니 어찌어찌해서 새우난을 만날 수 있었다.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와서 자세히 보니 거기 새우난이 있는 게 아닌가. 새우난을 보자 작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에 못지않은 감동이 진하게 밀려온다. 우리는 잠시 사진을 찍고 다른 개체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새우난 꽃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인 개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우난은 호젓하고 느긋했으며 심지어 근사하기까지 했다.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세상 어디를 가서 이런 새우난을 만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금새우난과 옥잠난초를 보기 위한 장소였다. 작년에도 금새우난을 보러 갔을 때 길을 찾지 못해 30분 넘게 헤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여전히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래도 작년에 헤맸던 입구를 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시작이 좋았다고 끝까지 좋은 건 아니다. 이래서 모든 일에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가는 길에서 다시 헤매는 일이 생겼다. 1년밖에 되지 않았건만 이놈의 기억이 원망스럽다. 가끔 기억은 불확실하고 혼란스럽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5년 전이나 10년 전과 관련한 사건 이야기를 할 때면 그걸 기억한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 인간들은 그걸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우리 기억이란 얼마나 불확실하던가. 우리는 흔히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불과 며칠 전에 생긴 일에 대해서도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게 허다하다. 어떤 때는 저녁에 차를 주차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치매’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찾으며 허둥댈 때면 가끔 나 자신이 싫어지는 날도 있다. 그런데 하물며 1년 전이나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다. 나는 영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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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숲에서 헤매다가 길을 잃었다. 도저히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나와 보니 간벌한 도로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제법 큰 도로가 나왔다. 알고 보니 사려니 숲길로 이어지는 도로였다. 감만 따라 걸었더라면 사려니 숲길까지 갈 뻔했다. 그 길에서 나는 왕나비를 만났다. 제주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왕나비였다. 왕나비는 우아한 날갯짓으로 내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혼자 보는 게 내내 아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샘과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나섰던 길은 맞았으나 우리가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진 게 문제였다.


그날 박형근 선생은 금새우난을 보고 난 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눈을 확 높여놓아서 다른 새우난은 눈에 차지 않아요. 앞으로도 이보다 더 멋진 새우난을 보기는 힘들 것 같아요.


박샘은 몇 번이고 이 말을 반복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식물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빈말은 아닐 터였다. 심지어 동행한 박샘은 금새우난 앞에서 큰절까지 올리는 게 아닌가. 허튼말이 아니라 난 앞에서 서슴없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그의 식물사랑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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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작년에 야생에서 새우난을 만난 이후 수목원에서 본 새우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손을 탄 식물과 야생에서 자란 식물은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같은 야생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개입한 것과 자연이 키운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번에 보았던 새우난은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선이 곱고 색깔이 선명해서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금새우난도 멋졌지만 더 압권은 바위 위에서 자라는 옥잠난초였다. 작년에 볼 때도 바위 위에서 자라나는 그 자태가 신비로운 생각이 들었던 난초였다. 올해 역시 어김없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 샘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난초보다 뛰어나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기야 나도 이런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직접 눈앞에서 보는 데도 이런데 이게 어떻게 심어서 가능할 수 있겠는가.


숙소로 돌아왔음에도 그 감동은 여전했다. 눈앞에서 오늘 보았던 새우난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박샘도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제주에 머무는 내내 새우난 이야기를 몇 번 더 나눴다. 그만큼 자연에서 보았던 새우난의 후유증은 컸다. 마치 새우난에서 비치는 후광이 다른 식물들을 감싸고 있던 빛까지 다 날려버린 느낌이었다.


가끔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난다. 내가 새우난을 만난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아마도 제주도에서 만난 새우난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빛나는 순간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희귀식물이 있는 장소를 묻는 것은 식물 탐사하는 이에게는 실례에 해당한다. 강제성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서로 그 정도는 지키는 셈이다. 이 글에서도 장소 노출 문제로 사진은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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