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신안군 반월도에 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900년 우물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다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900년’이라는 단어만이 눈에 들어왔다. 900년이라면 어림짐작으로도 고려시대에 우물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고 무슨 사연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900년은 나로서는 쉽게 가늠이 안 가는 시간이다.
우물로 가는 입구
시간을 거스르는 게 대세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번 퍼플 섬을 찾았을 때는 우물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조금은 더 시간을 들여서 우물에 다가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아껴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박지도(박지리)는 마을 면적이 175㎢, 해안선 길이 46㎞이며 산 정상 높이는 해발 130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구전에 의하면 1700년께 김해 김씨 김성택이 이주 정착하여 이곳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마을 뒷산 정상에 당(堂)이 있었는데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질병 퇴치를 위해 당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마을 사람들은 당이 있었다는 산을 당산이라 부르고 있다.
박지도 내역 설명 안내표지석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뱃사람들의 삶이란 불완전하다. 그들에게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자 질고의 공간이기도 했다.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평화롭고 인자하다가도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 언제 그랬냐는 듯 모질게 내치기도 하는 대상이다. 그럴 때마다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을 테니 섬사람들이라면 어딘가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게 당산에 대한 염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우물로 가는 초입
나는 박지도 입구에서 우물까지 도보로 25분이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가기로 했다. 하지만 쉽게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우물로 가는 길은 밋밋하고 단조로웠다. 심지어 어느 지점에서는 가파른 느낌이 들어 힘이 들기까지 했다. 만약 섬사람의 운명이 이런 길을 걸어 올라가서 물을 길어 생활해야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새들이 내가 걷는 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박지도에 오기 전, 구백 살 우물을 검색해 보니 관광객의 인기를 끈다고 하였으나 직접 올라본 입장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중간에 안내 표지판도 없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길이 맞나 계속 의문이 들었던 이유였다. 그건 우물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물의 유래를 소개하는 안내판이나 관련 내용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다 보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하다못해 900년이라 평가했을 만한 기준이 있을 텐데, 그걸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안타깝게도 우물물은 먹을 수 없었다. 달고 시원한 물 대신에 낙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구백 살이나 먹은 우물물이 이제는 그 의미를 상실한 때문이었을까? 마시지 못하는 우물물은 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 신안을 여행하면서 이번처럼 허탈했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아쉽고 기대가 컸던 게 신안여행이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마치 내가 그 우물물 신세처럼 느껴졌다.
그날 우물에서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비극은 하필 아래로 난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갔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을 내 호기심은 그 평범함을 거부했다. 아래로 가면서도 이게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으나 분명히 길이었기에 그냥 향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만약 길이 없다는 안내 표지판만 있었더라도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숲은 제법 울창했다. 나는 없는 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숲에 간벌한 나무들이 있었기에 아래로 내려가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선택은 멍청한 짓이었다. 만약 조금만 더 시간이 늦었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그 숲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겨우 130m밖에 안 되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려오니 라벤더가 반긴다. 그나마 이것조차 없었더라면 정말 막막할 뻔했다. 2015년 전라남도에서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되었던 반월도와 박지도에는 구백 살 먹은 우물 외에도 ‘중노둣길’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렇다. 아까 갔던 구백 살 먹은 우물 근처에는 암자터가 있었다. 지금은 그곳이 암자가 있었던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황폐해 보였지만 말이다.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반월도와 박지도 암자에 살던 비구니님과 비구스님이 서로를 연모하게 되었다. 두 스님은 양쪽에서 돌을 수년 동안 놓으면서 마침내 바다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데 어느덧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다. 운명적인 만남도 잠시 밀물이 밀려들면서 두 스님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바닷물에 휩쓸리고 만다. 이렇듯 두 스님은 사라지고 썰물 이후 노둣길만 남았다. 그 후 주민들은 그 길을 ‘중노둣길’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간신히 다리로 돌아오면서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시간이 넉넉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가를 깨달았다. 그러면 어떠랴. 이곳은 신안이고, 나는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으니. 저녁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게 떠돌이의 운명이다. 원래 여행은 그런 떠돌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