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 농사를 망치다

by 산들

혹시 논에 가 봤나요?

옥수수는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마치 꼭꼭 숨겨둔 비밀을 들키는 느낌이었다. 사실 초보 농사꾼으로 옥수수를 심는 과정 중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혼자 땅을 파고 골을 고르고 씨앗을 심다 보니 힘이 들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래도 나를 지탱해준 건 여러 명의 격려와 도움이었다. 특히 씨를 구해준 장샘과 현장 실습을 해준 박샘의 도움이 컸다.


이번에는 망쳤다고 생각하세요. 그것도 경험이니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웃었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한 건 아니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농사를 택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씨를 심으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잘 자란 옥수수를 기대했던 터라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옥수수가 하나도 안 나왔다 해도 괜찮아요. 내년에 잘하면 되죠!


사실 씨를 심은 이후에 싹이 잘 자라는지, 얼마나 컸는지 내심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마음 한구석에는 안 자랐으면, 아니 아예 싹이 트지 않았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확인을 미루고 있었다.


씨를 심고 일주일쯤 지난 후 가서 보니 우리 땅보다 2주 전에 심은 옥수수는 한창 키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땅에 심은 옥수수는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당시 찍은 사진을 보면 절망에 가까운 내 비통함이 묻어난다. 온통 잡초만이 무성했으니 말이다. 차라리 이삭여뀌가 옥수수였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그날 논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박샘은 아마도 씨앗이 썩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사진에서는 옥수수가 딱 한 그루밖에 안 보였기 때문이다. 반신반의하던 나는 그 말을 듣자 낙심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다행히 옥수수는 7월까지 파종이 가능한 작물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옥수수 모종을 사서 심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


그동안 몇 번이고 혼자 해질 무렵까지 땅을 고르고 씨를 심었다. 그걸 보고 또 얼마나 뿌듯했던가. 씨를 심고 나니 진짜 농사꾼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었다. 씨를 심은 이후로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런데 고심해서 심었던 옥수수가 눈앞에서 사라진 셈이다. 한편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려 4,500알의 옥수수가 다 썩어버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보은에서 직접 씨앗을 공수해준 장샘 역시 아직까지 싹이 안 나는 게 이상하다며 심은 자리를 파보라는 말을 했다. 답답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뭘, 걱정해요? 망치면 내가 옥수수는 구해줄게요. 아주 맛있는 걸로.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씨를 심은 이후 도무지 싹이 나지 않는 옥수수 원인을 분석해봐도 답이 없다는 거였다. 이런 적이 없다는 말이 뒤따랐다. 물론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워낙 가문 상황이었으니 그 영향을 어느 정도 받지 않았나 하는 추측만이 대안으로 나왔다. 장샘은 어떻게든 싹이 날 거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초보 농사꾼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해가 쨍쨍한 날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은 비가 제법 많이 왔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 옥수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날이 왔다. 옥수수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요동쳤다. 논으로 가는 길은 풀이 무성했다. 이 정도라면 어떤 식으로 건 옥수수가 자랐을 것이다.


옆에 심어둔 옥수수는 이미 내 키를 넘길 정도로 커 있었다. 어떤 것들은 곧 수확할 수 있어 보였다. 그걸 보자니 부러움이 밀려왔다. 한편으로 후회도 느꼈다. 씨가 아니라 모종을 사서 심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우리 옥수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 이상으로 잘 자랐다. 아주 잘.

전체 씨앗을 생각하면 일부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지난번에 심어두었던 단호박도 자리를 제법 잘 잡았다.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다. 4500개의 씨앗에서 100여 개니 완전 망쳤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초보 농사꾼 대박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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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체를 세어 보니 글쎄 100그루가 훨씬 넘는다. 시간이 없어서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을 테네 더 많을 수도 있다. 전체 뿌린 씨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지만 이게 어딘가. 완전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초보 농사꾼이 죽다가 간신히 살아난 셈이다.


이제 옥수수와 좀 더 친해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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