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동안 마음에 두고만 있었던 신안 도초도에 다녀왔다. 봄부터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섬이었으나 여름에 수국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일정을 바꿨던 터였다. 남강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도초도에서 내리니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배가 1시간에 한 대씩 있는 편이어서 별로 고생하지는 않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제법 많은 편이고 자가용을 가지고 들어온 이도 적지 않아 보였다.
항구에서 수국 축제가 열리는 수국공원까지는 대략 25km. 수국공원으로 가는 셔틀버스들이었다. 이 구간은 셔틀버스로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에 탔던 승객 한 분이 내려달라고 기사님께 주문을 한다. 바로 팽나무 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여기서부터 걸어야 그 멋진 풍경을 제대로 다 감상할 수 있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망설이지 않고 바로 내렸다. 알고 보니 그 길은 팽나무 10코스 중에 1코스 출발점이었다. 마침 스탬프 이벤트를 하고 있어 1구간 스탬프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수국이 화사하게 핀 길 양쪽에 전국 곳곳에서 기증받았다는 팽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팽나무 숲길이 만들어진지는 대략 2년 정도 지났다고 했다. 이 팽나무 숲은 산림청에서 주관한 ‘2021년 녹색도시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가로수 부문 우수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길은 전국 각지의 수령 60∼100년 된 팽나무 716주를 기증받아 만든 숲길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전국 곳곳에서 온 나무들. 내가 본 것은 대부분 전남산이었지만, 이니만큼 상징성도 크고 그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팽나무는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의 마을 어귀나 중심에 마을나무나 당산나무로 자리 잡아 전통 민속 경관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팽나무는 보통 500년은 훌쩍 넘기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장수나무이기도 하다. 한글명 팽은 한자憉木(팽목), 朴樹(박수) 등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흔히 달주나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靑檀(청단)이라고도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신목(神木)으로 인식되었던 팽나무는 달콤한 열매 때문에 새들이 좋아하기도 한 나무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30752&cid=46694&categoryId=46694)
도초도 팽나무 숲길은 업체에 의뢰해서 만든 숲길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가져와서 심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었다. 쭉 뻗은 팽나무 숲길도 인상적이었지만 길 양옆을 가득 메운 수국도 보면 볼수록 멋이 흘러넘쳤다. 다만 장수하는 팽나무의 특성상 너무 조밀한 느낌이 들어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숲길에 심은 수국이 20만 주라 하니 그 수량도 엄청날 뿐만 아니라 다양성에서도 압도적인 느끼이었다. 그동안 수국이나 산수국 정도만 보았던 나로서는 그렇게 다양한 수국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하고 그런 발상을 한 전라남도가 한편으로 부러웠다.
하늘로 뻗은 팽나무와 함께 탐스러운 꽃송이를 머금고 있는 수국을 보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길을 걸어가며 사진을 찍는 내내 싱글벙글 연신 즐거운 표정이었다. 사진을 찍는 남자들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여자들은 수국에 착 달라붙어서 자연스럽게 모델 포즈를 연출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자들은 찍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면 어떠랴. 이런 멋진 풍경에서는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상인 것을.
도시숲 조성사업에서 대상을 받은 팽나무 숲길
점심시간대였는데도 이런 안내가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았나 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최근 들어 아내의 무릎을 괴롭히고 있는 고질병이 원망스러웠다. 아마도 아내의 무릎 상태가 좋았더라면 같이 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수국과 팽나무 숲길이라면 걷기 좋아하는 아내가 싫어할 리가 없다. 평소에도 걷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최근 들어서 어깨가 고장이 났고 무릎 또한 좋지 않다. 인생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계속 어깨 통증을 호소했는데 그게 오십견으로 판정이 났다. 게다가 무릎까지 다쳤으니 얼마나 속이 상할 것인가. 혼자 왔지만 나 역시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아픈 사람 속은 본인밖에 모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아픈 이는 죽을 맛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무릎을 다쳤으니 마음고생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내가 달리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내는 나중에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했다. 800km는 치유와 힐링의 공간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상당한 체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내는 지인들을 계를 들어 여행경비를 저축하는 중이다. 빨래 무릎이 좋아져서 부디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최근 해외여행을 나간 지 3년이나 되다 보니 다시 나갈 때 후유증이 없을까 싶기도 하다. 일단은 항공권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많이 올랐기 때문에 잠시 기다려야 할 듯싶다. 그래도 이 멋진 팽나무 숲을 만났으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