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건달 농사

by 산들

"건달 농사"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나는 살면서 내가 농사 이야기를 꺼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농사 중에 ‘건달 농사’라는 게 있나 싶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건달 농사는 좋은 말로는 유기농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고 다른 말로는 방치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 농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많다.

그중 대표적인 말이 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농부가 얼마나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최종 수확물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건달 농사라면 상황은 다르다. 만약 옛날처럼 동네에서 건달 농사를 짓는다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게을러터졌다고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며 된통 욕을 먹을 게 뻔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멀쩡한 땅을 방치하거나 농사를 소홀히 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해왔다.


제일 먼저 들은 게 잡초 이야기였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여름철 논에 나는 풀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하기는 농사에서 가장 큰 적은 잡초와의 싸움일 것이다. 한때 귀농한 이도 잔디를 심었다가 풀 때문에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결국 제초제를 치지 않으면 농사는 기대하지 말라는 농담 아닌 협박이 돌아왔다.


물론 옥수수를 심기 전부터 농약을 치지 않으면 벌레 때문에 먹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내다 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품성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먹을 음식에 농약을 친다는 게 꺼림칙했다. 아무튼 농약을 칠 시기에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일단 한 번 제초제를 뿌리고 나면 풀이 덜 자랄 거예요.


그렇다. 제초제를 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초보 농사꾼으로서는 풀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매일 가서 풀을 매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매일 끊임없이 일은 생겼고, 어떤 날은 발을 동동거리며 일을 해야 했다. 이런 형편에 농사라니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아예 농약을 치지 말라고 권했다.


어차피 팔 것도 아닌데 농약을 뭐하러 쳐요? 대신 옥수수가 열려도 작게 열릴 거예요. 그래도 맛은 좋겠죠! 그러니 농약을 치지 마세요.


솔직히 나는 그 말에 훨씬 더 매력을 느꼈다. 농약을 치기 위해서는 농약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약통에 농약과 물을 희석하여야 하는 데 일단 우리 땅에서는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수병에 물을 담아서 그 일을 하기에는 도대체 몇 번을 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 모두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아마 처음 옥수수 씨를 뿌리기 전에 어느 정도 상황을 알았더라면 검은 비닐도 씌우고 제초제도 뿌렸을지 모른다. 이미 비닐은 있었고 제초제도 준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시기를 놓쳤고 결국 나는 그냥 씨앗을 심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났다.


제초제를 안 뿌리면 피나 잡초가 엄청나게 날 겁니다. 그러니 편하게 생각하세요.


불안에 떠는 나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매달린다고 되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내게 농사는 그럴 만한 가치는 없어 보였다. 그러니 우선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면 훨씬 쉬울 터였다. 시간이 지나면 옥수수가 풀이 자라는 속도를 앞지를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옥수수가 자라는 속도를 풀은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내가 아는 상식의 전부였다.


사실 나는 평소에 논을 보면서 잡풀이 그렇게 많이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물론 벼가 그냥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 길을 지나다니다 논을 보면 잘 자란 벼는 있어도 잡초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피야 그렇다고 하지만 잡초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갈 때마다 옥수수를 심은 논이 거의 풀밭이라 할 정도로 풀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만약 옥수수를 심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잡초밭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미리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잡초가 그렇게 세력을 뻗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만약 검은 비닐을 씌우고 제초제를 뿌렸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을 것도 아니고, 옥수수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니 딱히 그랬을 리는 없다. 적당히 이걸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건달 농사라, 나는 은근히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사실 평생을 살면서 건달처럼 살아본 기억이 없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건달은 깡패와는 다르다. 오히려 백수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건달을 찾아보니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이라는 규정이 나온다. 적어도 나는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며 살지는 않았으니 건달과는 인연이 멀다.


어떤 이는 건달이라는 말에 치를 떨지도 모른다. 만약 건달이라는 단어가 폭력배와 동일한 의미로 다가온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건달이라는 말에는 적당히 낭만을 누리면서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건달 농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나 짓지 못한다. 건달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게 아니라 하늘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건달 농사꾼은 한해 작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비난과 비판 어린 시선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여러 악조건을 견디며 이길 수 있는 뚝심을 지녀야 한다. 세상에 농사꾼은 많아도 건달 농사꾼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둘째,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이 항목은 농사를 왜 짓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수확량을 늘여야 하고 자신의 땅에 잡초가 살겠다고 올라와도 그들을 제거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상생의 개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잡초를 제거의 대상으로 내세우는 순간 스트레스가 몰아닥친다.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 시간의 미학을 즐겨야 한다.

초보 농사꾼이 흔히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이가 벼가 자라지 않기에 기다리다 지쳐 벼를 일일이 늘여놓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진득한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야말로 건달 농사의 최상의 덕목이다. 사람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게 타이밍을 잡는 일이다. 농사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한다. 이때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장샘의 말에 의하면 건달 농사는 거의 방치 수준에 가깝다. 말 그대로 집중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설렁설렁하는 농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건달 농사라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 단어인가. 당연히 수확이나 결과물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애초 내 주제에 농사에 발을 들인다는 게 잘못되었다. 그러니 건달 농사야말로 내게는 딱이다.


아마 얼마 후면 건달 농사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아직까지는 실패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단 옥수수는 발아했고 자라고 있으며 생각보다 더 무성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비닐을 씌우고 제초제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체계적인 농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이후에 얼마나 농사를 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 건달 농사의 매력에 푹 빠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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