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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ug 19. 2022

곤충 만나러 가는 길

이번 내가 탐사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참가자들의 반응이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개 40대를 넘어서면 여자들은 갱년기와 맞물려 오는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무기력증에 빠진다고 한다. 남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배가 나오고 중년이 되다 보면 매사가 의욕이 없다.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고 직장에 다니는 일도 시들해진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정부희 선생이 설명을 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몰려들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한다. 야외에서 설명이나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들은 한 귀로 듣고 흘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달랐다. 말 한마디라도 놓칠까 봐 조바심을 내고 발길을 재촉했다. 노트를 꺼내 들고 연신 받아 적는 모습도 신선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초보자인 나로서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야외에서 곤충을 만나거나 생물을 만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을 제일 궁금해한다. 마치 이름을 알면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듯이 이름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대상과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첫인상은 대상을 보는 내내 우리를 지배한다. 하지만 정부희 선생은 이러한 접근방식에 일침을 가했다.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이름에 속지 말라!”라는 요지였다.      


이름과 전혀 관련이 없는 그런 곤충도 제법 있다는 이야기였다. 유래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처음에 이름을 붙였던 사람은 그의 합당한 이유를 찾았을 것이고 학명으로까지 등재했을 터였다. 이후에 많은 이들이 사용하다 보니 그 이름이 대상과 동일시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작명자의 착각이거나 본인의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다음으로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하나의 개체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흔히 대학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은 이론에 강하다. 그들은 실천이 아니라 학문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대상은 논문을 쓰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이다. 강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까 깊이는 있을지언정 딱딱하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진다. 현장 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강의는 사람을 졸리게 만든다.     


내가 숲해설 교육 강의에서 제일 최하점을 줬던 것은 대학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간이 아까워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반면에 수업시간 내내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었던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수많은 경험과 실수를 하고 본인의 체험이 녹아든 스토리는 다른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그 늪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정부희 선생 역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논문을 쓰는 학자지만 현장이 가미됨으로써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현장이 가미된 곤충 이야기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일단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생동감이 넘치고 각각의 상황들은 긴장과 호기심의 연속이다. 자연은 예측 불허의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모벌이 나방 애벌레를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끌고 가서 알의 먹이로 제공하는 과정 설명만 해도 그렇다. 이야기에 논리가 있고 타당한 근거가 있으며 스토리가 있고 자연의 신비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거기에다 전문적인 지식까지 곁들이니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동정 포인트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을 해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진도 나가기는 힘들었다. 실력을 갖춘 이들은 대부분이 다 진도에 연연하지 않는다.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 이면의 허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고수는 하나를 알려주더라도 깊이 있게 알려준다. 그리하여 다른 것들은 다 잊어버리더라도 그것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알게 해 준다. 한때 세상의 관심이 쏠렸던 빨간 펜이나 별표 다섯 개, 이런 기법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부희 선생의 강점은 생물 개체의 이름 유래. 특성, 개체와 특정 기주식물의 연관까지 종횡무진으로 식물과 곤충 사이를 넘나든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설명을 처음 듣는 초보자라 할지라도 대략적으로 전체 생태 그림의 얼개가 그려진다.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나는 이야기니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선생이 늘 외치는 한마디가 있다.      


“루페의 생활화!”     


실제로 우리가 어떤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들은 어떤 대상을 접할 때 감에 의존해서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익혔던 방식으로 이해한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다른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거기에 도구가 결합하면 상당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은 거추장스럽고 부자연스러우며 어떤 과정 하나가 추가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냥 눈으로도 볼 수 있는데 굳이 왜 루페를 이용해서 다시 봐야 하는 식의 불만이 밑바닥에 깔려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루페를 통해 사물을 보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그 안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동정 포인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루페를 이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숲해설을 제법 들었어도 루페를 이용하는 법을 그렇게 강조한 이는 처음이었다. 한두 번 정도 루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거나 루페를 써보자고 이야기해 준 경우는 있었어도 강의 시간 내내 루페를 들고 확인하고 강조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물론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또는 유아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분들은 루페 사용이 잦을 것이다. 

    

루페를 이용한 관찰은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섣불리 판단하기 쉬운 오류와 허점들을 점검하는 일이며 거기에 논리적인 타당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루페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오류를 잡아주고 자신의 촉만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오류를 사전에 차단한다. 파브루가 살던 시대에는 루페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루페가 있는 시대이니 곤충과 친해지기 위해 평소에도 식물이나 곤충 관찰할 때, 루페 사용을 권할 만하다.     



 이번 야외 곤충 탐사에서 얻은 또 다른 수확 중 하나는 지퍼백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식물이야 사방을 돌아가면서 보고 관찰할 수 있지만 곤충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아차 하는 순간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거나 날아가는 일도 잦다. 곤충 자체가 한 자리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루페로 곤충을 보는 일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곤충의 습성 자체가 어느 한 곳에 진득하게 있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관찰하기 힘들다. 하지만 곤충이 지퍼백에 들어가는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상황의 주도권은 곤충에게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곤충 입장에서도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일정 시간 관찰을 하고 놓아줄 경우,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잡았던 잠자리 개체 몇도 시간이 상당히 흐른 후에 놓아주었는데도 여전히 생생하게 날아다녔다. 정부희 선생을 통해 지퍼백의 효율적인 사용 방법을 알게 된 것도 이번 강의에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다.     



곤충 하면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지퍼백에 들어가 있는 곤충을 보면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다. 아이들의 경우, 손으로 만지거나 접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좀 더 곤충과 친해질 수가 있다. 루페의 더 큰 장점은 확대경의 특징을 이용해서 곤충의 이모저모를 샅샅이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부희 선생은 곤충을 다룰 때마다 곤충에게 ‘미안하다’ 연신 되뇌었다. 아무리 교육용이라 하더라도 곤충이 받을 스트레스에 대해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동안 논문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곤충을 회부하고 장기를 끄집어내고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 바탕에는 곤충에 대한 애정이 깃들여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기는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숲해설을 하는 이 가운데는 곤충을 싫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숲 해설을 하다가 곤충이 본인이 날아올 때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거나 몸을 움츠린다면 아마 숲에서 해설을 듣는 사람들의 신뢰도는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곤충 역시 숲의 일부이고 자연계의 속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곤충이 단순한 호기심과 즐거움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이번 탐사를 마치며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번 행사 참가자들이 조금 더 곤충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참가자들은 나보다 훨씬 내공을 쌓은 분들이기에 잘 알겠지만 곤충을 대하는 자세를 올바로 익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아마 이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곤충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궁금하면 도감을 비롯해서 자료를 찾아보면서 곤충의 세계에 한 발 더 들여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을 알아간다.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보이면서 한 걸음 더 자연의 세계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곤충이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냥 벌레가 아니라 각각의 이름을 가진 생명체로, 그들이 생존 전략으로 택한 삶의 방식과 눈부신 사랑 이야기를 만날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깊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부희 선생이 7시간의 거리를 무시하고 전주에 내려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숲해설가들을 만나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자기가 발견한 곤충의 세계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전달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오늘, 이렇게 해서

나는 또 곤충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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