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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ug 27. 2022

신안 새우란을 찾아서

예전에 제주도에서 새우란을 본 기억이 있다. 봄날 서귀포에서 새우란을 보는 느낌은 매우 각별했다. 말로만 듣던 전설의 야생 새우란을 눈앞에서 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숲길을 헤치고 도착한 계곡에는 한 무더기 한라 새우란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사로잡았던 건 바위 옆에 핀 두어 송이 새우란이었다.   

  

가끔 바람에 난이 흔들릴 때마다 내 가슴도 덩달아 흔들렸다. 그때면 햇살이 새우란을 휘감는 장면은 지상이 아닌 듯 영롱했다. 그 특별한 감정은 제주도를 떠나오고 난 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그 후 절물 휴양림에서 수백 송이의 새우란을 보기는 하였지만 서귀포에서 보았던 감동과는 결이 확연히 달랐다. 가끔 제주도에서 봄소식이 들릴 때마다 내 마음이 서귀포 계곡에서 만났던 새우란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우란은 정확히는 새우난초(학명 Calanthe discolor)이다. 흔히 산비탈, 숲 속 음지의 비옥한 곳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안 새우난초는 외떡잎식물이며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현재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희귀한 식물이다. 신안 새우난초의 꽃이 연한 보라색이고 작은 편이며, 꿀주머니가 위를 향하는 점이 특징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쉽게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로서는 연보랏빛보다는 오히려 순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신안군은 멸종위기 난과 식물 22종 중 9종이 자생하고 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의 난과 식물 자생지다. 국내에 자생하고 있는 새우란은 현재까지 새우란, 금새우란, 한라새우란, 여름새우란, 신안새우란, 다도새우란 등 6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신안새우란과 다도새우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안군 흑산도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세계식물분류학회에 품종으로 등록된 종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새우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꽃이 새우를 닮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필 새우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름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동원해서 모양을 연상한다. 새우깡 역시 새우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신안의 새우란은 꽃이 새우를 닮아서가 아니라 뿌리가 새우를 닮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새우란을 비롯해서 대개의 난들은 살아남는 과정에서 수난을 겪는다. 특히, 야생란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희귀하기 때문에 채취자들의 손을 타다 보니 실제로 현지에 살아남은 게 거의 없다. 난을 좋아하는 호사가들 때문에 야생란은 멸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난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도 돈이 된다는 소문에 마구잡이로 캐다 보니 전국에서 야생란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야생상태의 식물이 주는 천상의 아름다움은 이제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안군 자은도의 1004 뮤지엄에서 열리는 ‘새우란 전시회’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는 일단 새우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왠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제주도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겠지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우란 전시회장에 도착하니 시원한 소나기를 떠올리게 하는 새우란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친절한 해설사님께서 신안 새우란의 의미와 식생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나는 신안 새우란도 근사했지만 바위에 핀 홍도 풍란에 자꾸 눈길이 갔다. 하늘거리는 풍란의 모습이 청초한 소녀를 닮았다. 홍도 풍란은 거센 바닷바람을 받으며 자란다. 과거에는 홍도 근처에만 오면 풍란의 향이 났다고 하며 뱃사람들에게 풍란을 등대 삼아 위험지대를 피했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안개에 길을 잃었을 때

난 향기가 나면 조심한답니다 

육지가 가까우니 

근처에 암초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안개가 사람의 눈을 가릴 때

향기가 사람을 인도하는 법이지요 

정작 중요한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오는 법이므로      

그렇게 무사히 안개의 숲을 빠져나오면 

다리 힘이 풀린다지요

가끔 바다에서 향이 나면

이제는 살았구나 싶어진다나요 

- 홍도 풍란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위에서 오로지 의지할 것이라고는 풍란의 향기밖에 없었을 어부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어쩌면 지금도 홍도 풍란을 비롯하여 난초는 신안의 섬 어딘가에서 거친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피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식물이나 동물이라도 한 번 사람의 손을 타게 되면 멸종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만약 무인도 어느 곳에 야생란이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요즘은 무인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의 탐욕이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차라리 잊힌 상태로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식물에 관심이 있거나 난초를 좋아하는 이라면 8월 말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1004 뮤지엄에는 새우란 전시회와 조개 박물관을 비롯하여 또 다른 볼거리도 적지 않다. 내년 4월에 신안에서는 ‘새우란 전시회’를 기획 중이라 한다. 내년에 보는 새우란은 또 어떤 느낌이 들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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