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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12. 2022

지금 분재정원은 겨울꽃 전쟁 중!

우리는 천사 아귀찜에서 점심을 먹고 분재정원으로 향했다. 분재정원 입구에서 서포터즈 기념사진을 찍고 난 후에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최 측에서는 해설 부탁을 한 모양이지만 한 번 흩어진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남은 이는 별로 없었다. 다만 몇 명만이 함께 해설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분재정원에서는 신안 섬 겨울꽃 축제가 진행 중이다. 이 축제의 가장 정점에는 애기동백이 있다. 애기동백은 산다화로 불리는 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동백과는 다르다. 산다화는 동백과 거의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늦가을부터 초겨울에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늦동백 또는 서리동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 동백의 경우에 꽃이 떨어질 때 한송이 전체가 통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동백꽃이 떨어지면 세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필 때 한 번, 바닥에 떨어져서 한 번, 그리고 바라보는 너의 눈 속에 한 번. 그러나 애기동백은 떨어지는 것도 일반 동백과 다르다. 동백꽃이 선명한 붉은색인데 비해 애기동백은 분홍빛이나 흰색이며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진다.      



신안이 자랑하는 분재정원에는 대략 2만 그루의 애기동백나무가 있다. 이 꽃들이 만개하면 4천만 송이 애기동백꽃이 흐드러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갔던 날은 날씨가 흐려서인지 새들을 별로 발견할 수 없었지만 보통 때라면 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나는 이곳에서 동박새를 만났다. 지금도 그때의 여운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분재원을 지나 저녁노을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저녁노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상상이 가지 않는가. 미술관은 상설 1관과 2관, 그리고 특별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겨울철 동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다.  임동수 해설사님은 눈이 올 때면 꼭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눈 속에 푹 파묻힌 애기동백의 사진을 찍으러 온다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낭만이 있으면 더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겠다. 이 매력적인 동네를 찾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그렇게 조각 공원을 거쳐 분재원을 가서 저녁노을 미술관을 보고 다시 나와서 카멜라 가든을 거쳐서 애기동백숲까지 다녀왔다. 마침 엽서를 보내는 코너가 있어서 아내와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여름에 배달이 된다니 그때는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궁금하다. 제법 긴 구간이었으나 동기들과 함께 만개한 애기동백을 보는 재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자연 습지를 보니 지난가을에 와서 보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있다고 해서 다 보이는 것은 아니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두어 시간 찾았으나 이삭귀개, 땅귀개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혼자 와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으니 다음에는 전문가와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행사가 다 끝난 이후에 입구 쪽으로 오다 보니 신한 특산물을 판매했다. 특히 비금도의 시금치가 눈에 들어왔다. 비금도 시금치는 재래종이고 육지와 맛이 다르다는 말에 선뜻 손길이 갔다. 옆을 보니 각종 젓갈류와 건새우, 말린 민어를 판다. 아들 생각이 나서 낙지 한 통을 접어들었다.      



입구에 와서 같이 다녔던 일행을 다시 만났다 그중 영암에서 활동하는 박광자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시금치를 보더니 자신도 사야겠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우리는 잠깐 동안이나마 그렇게 신안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은 우리가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찍는 것도 좋고 유명한 명승지를 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고도 다른 이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보다 더 멋진 사진을 찍는 이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러나 사람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순간 평범한 이야기도 명품 이야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분재정원 행사가 끝난 이후에 입구에 나온 게 대략 2시 20분이었다. 그냥 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겨울 산타를 설치했다는 퍼플 섬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뜻이 맞는 5명이 모여서 한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가는 도중 분재정원에서 문화해설을 해주신 분을 만나서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분재정원에서도 커플섬까지는 제법 거리가 된다. 도착할 무렵쯤 빗방울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퍼플 섬은 몇 차례 찾았던지라 익숙하다. 그전에 완전히 물이 빠졌을 때와 물이 어느 정도 들어오기 시작할 때 보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물이 거의 가득 앉아 일 때는 가본 적이 없다. 게다가 산타 주위에는 전구까지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사진을 찍고 그 위에 커피숍에 가서 차를 한 잔씩 마셨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호쾌한 스타일의 주인장은 신안 여행을 하러 왔다가 신안에 빠져서 눌러앉게 갔다고 했다.      



우리는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김환기 고택으로 가기로 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보니 파란만장했던 김환기의 일대기가 그 그림과 함께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전에 내가 혼자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 그동안 김환기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실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흔히 예술가는 배가 고파야 한다, 배부르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예술가들은 창작과정에서 충분히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로서는 그게 부족한 모양이다. 그래서 예술가가 허기를 때우기 위해서 찬물을 마셔가며 썼다는 작품에 감탄하거나 물감 살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했다는 이야기에 탄복한다. 살아 있을 때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극적인 상황에 더 열광한다.      


그들로서는 예술가가 피둥피둥 살이 찌거나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여행을 하고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모습으로 남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예술가는 보기에도 안쓰럽고 손 대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낙엽처럼 빼빼 마르거나 요절했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모두가 가능한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자기에게 다가온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그걸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의 절대적인 후원과 지지에 힘입어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고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처절하게 죽음을 맞은 거에 대하여 사람들은 침묵한다. 그들은 예술가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해, 예술가는 원래 그래와 같은 쓸데없는 말을 무책임하게 던진다. 자신은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 예술가에게 혹독한 희생과 무한 책임을 원하는 게 사람이다.     

 

그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있다.      

“그래 얼마라는 거야?”, “그 사람 작품이 대체 얼마야?”     

그러다가 한국 최고의 최고가를 경신했다거나 그의 작품이 한 작품당 얼마하고 하면 부러움에 턱이 가슴까지 내려온다. 주변에 그런 친구 하나 없나 하며 안달하는 대신에 자신의 안목 없음을 먼저 비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목받는 작가도 있지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작가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 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1박 2일의 발대식과 팸투어에서 뜻하지 않게 여러 명의 동기를 얻었다는 게 기쁘다. 갈 때는 혼자였지만 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같이 인스타 주소를 교환하고 유튜브 구독자가 되었으며 또 그들과 즐거운 추억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서포터즈 기간 동안 그들의 빛나는 시간들이 신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발대식을 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부산했다. 서둘러 카메라 세팅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동영상 취재를 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었음은 물론이다. 코로나 때문에 1기 때는 발대식을 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동기들이 어떤 활약을 했는가 늘 궁금했다. 나로서는 2기 사람들이 보이는 그런 부지런함이 낯설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50만에 가까운 구독자라고 한 유튜브도 있었고 상당한 구독자를 보유한 블로그도 있었다. 한 명의 입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100명의 입은 지자체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이들이 연말까지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의 왕성한 활동 덕분에 신안을 찾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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