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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19. 2022

전주를 알아가며, 전주를 사랑하며

      

군대 시절과 해외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전주에서 살았다. 그만큼 전주에 대한 추억도 많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신춘문예를 거쳐 작가가 되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외지에서 전주 이름만 봐도 마음이 편안했다. 먼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주 표지판만 봐도 “드디어 집에 왔구나!” 하는 위안이 들었다. 



한때 내게 전주는 무거운 짐이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을 때 ‘전주’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기 때문이다. “맞아. 그런 곳이 있기는 하지.”,  “전라도 어디쯤” 하는 그런 느낌이 강했다. 무덤덤한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색깔 없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옥마을이 뜨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전주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하면 이제는 “아! 거기 한옥마을이요.” “거기 비빔밥”처럼 긍정적인 단어들이 먼저 나를 반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전주에 와서 기대를 잔뜩 하고 왔는데 실망이라거나 속은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툭하고 던질 때면 뒷머리가 뻣뻣해졌다. “이게 아닌데, 전주에 얼마나 멋진 곳이 많은데, 불과 두세 시간이나 반나절 만에 전주를 알았다고 그러나?”와 같은 반발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기회가 허락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전주의 숨은 이야기, 진짜 전주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실 전주에는 아직도 전주 사람들조차 모르는 곳들이 많다. 나는 전주 이야기를 쓰면서 이제야 진짜 전주를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전주에 대해서 한두 편의 글을 쓸 기회가 있기는 하였으나 전주의 구석구석을 찾아갈 계기는 많지 않았다. 매월 빠지지 않고 전주 이야기를 쓴 덕분에 전주에 대한 추억이 제법 내용이 풍성해졌다. 덩달아 내 삶도 더 넉넉해졌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는 전주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전주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전주의 꿈을 노래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삶에 지치거나 반가운 소식이 늘어날 때마다 이곳을 떠올리기 바란다. 그래서 내가 전주의 넉넉한 품에서 살았던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이곳이 그리움의 터전이며 뜨거움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고 우리 아이들이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내 고향, 내 삶의 뿌리,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가슴에 묻어두며 함께 가야 할 도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전주 사람들이 얼마나 정이 많고 살가우며 전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만큼 전주는 충분히 멋진 곳이고 한껏 매력을 품은 동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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